여행 이야기/2003~2005

2004 일본 여행기 '청춘18로 Go!!' Day5 -교토, 오사카- (12/15/2004)

GONZALEZ 2005. 5. 20. 16:05

 내가 처음에 야간열차에 대해 가졌던 느낌은 이거였다.

'돈절약 시간절약'

이동과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장거리 이동시 엄청난 메리트가 된다. 거기다 센티멘탈 그래피티 같은 게임에서는 야간열차 이용시 이동력 회복까지 가능하니 그야말로 환상의 이동수단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던 출입문 앞 좌석은 문이 열릴 때마다 찬바람이 휭휭 불어왔으며, 애당초 침대차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 야간쾌속열차는 수면에 대한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았다. (불조차 꺼지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잠들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눈 한번 붙혀보지 못한채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오사카에서 문라이트 나가라를 놓쳤던 건 오히려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

 열차를 갈아타며 오사카로 향하는데 열차로 출근 및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직장인과 학생들로 차내는 만원이 되어 있었다.
환승역인 나고야로 향하던 도중 '다음 역은 나고야...' 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난 당연히 금방 나고야에 도착할 줄 알고 선반 위의 짐을 내려놓은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 내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이었다. 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 서있던 한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나고야까지 10분은 더 가야 돼요"

 컥.. 근데 왜 방송이 벌써 나온거지@o@;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나고야까지의 10분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

 오사카에 가기 전에 잠깐 교토(京都)에 들렀다. 원래 계획에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고, 오사카에서의 일정도 그다지 빡빡한 건 아니라서 교토역 근처의 절 몇군데와 테즈카 오사무 월드 등을 둘러보았다. 교토야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사진을 찍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망가진 카메라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테즈카 오사무 월드에서 스탬프 한방(사진은 집에 와서 찍은것)

 



 다시 교토를 떠나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이나바 형은 약속이 있다며 먼저 민박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 위치도 모를 뿐더러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역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역 근처에 노부나가 서점이라는 대형 서점이 있어서 그곳에서 시간을 때웠다.

 노부나가 서점의 어덜트 코너를 어슬렁거리다 시간이 되어 역 앞으로 나가 이나바 형을 기다렸다. 이윽고 이나바 형이 나타났고, 밤샘의 여파와 누적된 피로로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애써 기운을 내며 민박을 찾아갔다. 원래는 다인실을 예약했는데 내일 새벽에 나가야 한다고 하자 방 하나를 우리가 쓰게 해줬다.

 민박에 짐을 정리해 두고 난바로 나왔다. 이나바 형은 나에게 난바의 지리를 알려주며 저녁에 우메다(梅田) 쪽에 가봐야 하기 때문에 길을 잘 익혀두라고 했다. 대강의 위치를 파악해 둔 뒤 난바역으로 오늘도 저녁 약속을 한 담군을 만나러 갔다.

 담군을 만난 뒤 다시 난바에서 모이기로 하고 이나바 형은 우메다로, 나는 담군의 안내를 받아 덴덴타운으로 향했다. 기대와 달리 덴덴타운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고, 컴퓨터 관련 상점들이 많은 편이었다. 소프맙에서 중고 CD 몇장(100엔 200엔-_-)을 구입한 뒤 다른 매장들을 좀 더 돌아보다 난바로 돌아왔다. 탐나는 아이템들도 보였지만 '미친척하고 사버릴까' 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담았다.

 이나바 형을 만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어제 저녁부터 말을 듣지 않으며 내 속을 태우던 카메라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 때문에 침울해져 있던 내 표정도 그제서야 환해졌다.^o^

 도톤보리(道頓堀)에서 오사카의 명물 킨류(金龍)라멘으로 저녁을 해결한 뒤 담군과 작별하고, 북오프에서 책과 CD 등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껏 어떻게 버텨오긴 했지만 이제 다리가 아프다 못해 끊어질 지경이었다.



킨류 라멘 앞에서


밥과 김치는 무한 리필된다. (숟가락이 없어서 말아먹긴 뭐하다)


게 요리점 카니도라쿠


북치는 소년 쿠이다오레타로.

 



 북오프를 나와 츠타야와 백엔샾에 들렀다가 민박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유흥가가 있었는데 약 30여미터 가량을 따라가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삐끼들의 호객행위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남루한 행색에 양손에 비닐봉투를 잔뜩 들고 있는 우리를 거들떠 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민박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녹초가 되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오늘 사온 것들을 정리하며 내일 히로시마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나고 한숨 돌린 후 잠깐 TV를 보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두기로 했다.

우리의 긴 여정도 이제 끝이 보인다..



민박에서 한 블럭만 건너면 나오는 유흥가. 무서운 곳이었다.


완전연소한 두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