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3~2005

2004 일본 여행기 '청춘18로 Go!!' Day4 -도쿄, 요코하마- (12/14/2004)

GONZALEZ 2005. 5. 20. 16:04

 아침에 민박을 나왔다. 이나바 형은 오늘도 약속으로 바빠서, 저녁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특별히 내 도움(짐들기 등-_-)이 필요하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게도 몇시간 정도 혼자 있을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저녁에는 요코하마(橫濱)에나 들렀다 가기로 하고, 일단 시나가와로 향했다.



아침에 바라본 신오쿠보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오후에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이나바 형과 헤어진 나의 목적지는 이케부쿠로. 원래 계획은 아키하바라(秋葉原)에 가서 중고 CD들이나 뒤져보는 것이었는데, 무슨 사쿠라 귀신이 붙었는지 나는 또 태정낭만당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도 없는 주제에!!

 어제도 그랬지만, 태정낭만당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다. 간혹 한두사람 정도가 드나들고 있었고, 외국인 몇명이 들어와서는 신기하다는 듯이 둘러보고 나가기도 했다.
동일인물은 아니었지만 어제같은 '단골' 들은 오늘도 보였다. 그들은 돈도 많은지 사쿠라카페의 비싼 메뉴를 두세개 씩 시켜놓은 채 죽치고 있었다.

 아키하바라에는 1시 쯤 가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전까지 여기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카페로 들어가 스미레 홍차를 주문했다. 스미레 홍차에는 두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핫/아이스, 레몬/밀크 중에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핫/레몬. 이윽고 홍차가 나와서 한모금 마셔보았지만, 내가 미각이 없는 건지 별 맛이 느껴지질 않아서 설탕을 왕창 퍼넣었다;


스미레 홍차(사진출처 태정낭만당 홈페이지)



 1시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홍차를 앞에 두고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홍차는 바닥을 보여가는데 누구랑 같이 왔다면 이야기라도 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어제처럼 미니라이브를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로 멍하니 앉아있자니 그건 내가 봐도 웃길 것 같았다.

 슬쩍 옆을 바라보자 예의 '단골' 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테이블 위에 먹을 것 말고도 이것저것 늘어놓고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만화가인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옳커니~'

 그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나는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무언가 빼곡하게 적으며 바쁜 척을 하기 시작했다-_- 별 짓을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뻘쭘하게 있는것 보단 여행일지라도 적어둘까 하는 생각도 있고 해서..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가 더 이상 종이에 쓸 공간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태정낭만당을 나왔다.

 이케부쿠로를 떠나 다시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작년에 이곳에 한번 와보았지만, 저녁에나 도착했었고, 그나마 또 엉뚱한 데다 시간을 소비한지라, 이번엔 제대로 구경하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돈이 없었다-_-

 어제 유라쿠쵸에서처럼 여기도 PSP 때문에 난리였지만, 나는 중고소프트 진열대 앞에서 앞으로의 여행 경비를 일일히 계산해 가며, 100엔, 200엔짜리 게임들만 몇개 집어들어야 했다. (간혹가다 50엔짜리가 나오면 쾌재를 불렀다) 그나마 내가 찾는 것들이 대부분 중고인 새턴 게임들이라 그런대로 아쉽지는 않았다.



왜 난 이런 사진만 찍는거지-_-



 아키하바라에 몇시간 머물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시나가와로 돌아와 이나바 형과 합류했다. 시나가와역도 꽤나 크고 복잡한 곳이라서 슬쩍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이나바 형을 만날 수 있었다.

 시나가와에서 케이힌토호쿠(京浜東北)선을 타고 요코하마로 향했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른채 요코하마역에서 내려 땅집고 헤엄친 경험을 얘기해줬더니 이나바 형이 경악을 했다.
아무튼 그때 기억도 있고 이곳 지리를 알고 있는 이나바 형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차이나 타운 근처의 이시카와쵸(石川町)역에서 내렸다.

 역 근처의 요시노야(吉野家)에서 저녁을 먹은 뒤, 모토마치(元町)를 지나 중화가로 들어갔다. 차이나 타운이란 곳은 영화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직접 와보게 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몇군데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조양문(朝陽門)으로 빠져나와 이번엔 해변 쪽에 있는 야마시타(山下) 공원으로 향했다.



요시노야에서 먹은 부타동(豚丼). 원래는 규동(牛丼)을 주력으로 하는 곳인데,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판매가 중단되었다.


모토마치에서


차이나타운의 유령


주작문(朱雀門)을 통해 중화가로 들어갔다


중화요리점 슈엔(周苑) '불꽃의 요리사 주부덕' 의 그 주부덕(周富德)씨가 경영하는 식당이라고..


조양문을 나와 야마시타 공원으로


휘황찬란한 중화가


지나가다 본 Urban SQUARE. 게임센터인가?



 야마시타 공원 안쪽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히카와마루(氷川丸)호가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요코하마의 멋진 야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할 차례. 그러나 신나게 해변을 따라 사진을 찍어대던 나는 잠시 후 그만 풀이 죽고 말았다.

 몇시간 전부터 상태가 조금 이상하던 카메라가 기어이 맛이 간 것이다.

 코스모월드, 랜드마크 타워, 닛폰마루(日本丸) 메모리얼 파크 등 요코하마의 명소들이 눈 앞에 나타날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셔터를 눌러 보았지만, 액정에는 시커먼 화면만이 보일 뿐이었다. 작년에 이곳에서 찍은 백여장의 사진을 바이러스로 날렸었는데, 올해는 카메라가 고장나다니 요코하마와 나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후의 시간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해변을 빙 돌아본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도쿄로 돌아왔다. 도쿄역에서 11시 43분에 출발하는 문라이트 나가라를 타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키하바라에 가보았는데,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은 뒤라 그냥 도쿄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히카와마루


기껏 야경을 보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야마시타 공원의 인도 수탑(インド水塔)


무슨 건물인지?




 도쿄역에서 삼각김밥등을 사먹으며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되어 문라이트 나가라를 타러 갔다. 붙어있는 좌석이 아니라서 이나바 형과는 따로 앉아야 했는데, 내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에 있었다. 야간열차를 타보는 건 처음이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리가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출입문 쪽에 있는 내가 제일 앞좌석이라서, 앞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선반에 짐을 올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중간에 갈아탈 일 없이 오가키까지 가면 된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차 안에서 보내게 되는 밤은 어떨런지, 카메라는 과연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사이 열차는 도쿄를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