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3~2005

2005 도쿄 여행기 Day1 -하라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8/15/2005)

GONZALEZ 2005. 8. 27. 22:58

  6시 10분 인천공항행 버스를 탔다. 이번 여행에 동행할 '돌아와 스미레양' 님(이하 스미레형)과는 7시 30분 정도에 공항에서 만날 예정이었으나, 버스가 늦어서 8시쯤 도착하게 될거라는 스미레형의 전화를 받았다. 날씨는 잔뜩 흐린채 간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7시가 약간 넘어 공항에 도착했다. 딱히 할일도 없고 해서 그냥 시간을 보내다가 얼마 뒤 도착했다는 전화가 와서 스미레형과 합류했다.

 공항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대충 아침을 때운 뒤(엄청 비싸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가방을 살펴보니 항공권과 가요쇼 티켓을 넣어둔 클리어 파일이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사색이 되어 롯데리아로 뛰어갔고, 다행이 그곳 점원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주었다. 아직 여행은 시작도 안했는데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듯 했다.


 검색과 출국심사등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유있게 준비한다고 한건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이륙시간은 10분 남짓 남아있었다.

 두시간 동안 뭘할까..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갑자기 옆자리의 외국인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건네왔다.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이 청년은 유학생인듯 했는데, 나한테도 계속 일본에는 공부하러 가냐고 물어보는데 놀러간다고 대답하자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수준이 안맞아서 미안합니다ㅠ

 나리타(成田)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마치고 지하철 역으로 나왔다. 꼴에 경험자라고 일본행이 처음인 스미레형에게 입국심사시 어떤식으로 대답하라고 얘기해줬는데, 한마디도 안물어봤다고 한다.-_- 간만에 비행기를 타서 그런가 목이 좀 뻐근했는데 걷다보니 그럭저럭 괜찮아 졌다.

 나리타에서 민박까지 가는 것은 2년 전과 별 다를게 없었다. 다만 여행 전 민박을 다른 곳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목적지가 신오쿠보(新大久保)가 아닌 스가모(巢鴨)였다는 것 정도?

 여행기에 앞서 적었지만 민박(첫 일본여행 때 묵었던 그곳)을 여유있게 예약해뒀다가 같이 부탁했던 티켓 대행이 영 지지부진해서 홧김에 민박째로 취소해 버린 건 좋았는데.. 그 즈음에 신오쿠보 근방의 민박들은 다들 방이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다른 곳을 알아보다가 스가모의 한 민박을 찾을 수 있었고, 숙박비나 다른 조건들이 오히려 더 나았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예약을 마쳤다. 

 스가모는 닛포리(日暮里)와 세 정거장 거리였기 때문에, 신오쿠보로 갈 때보다 시간은 더 적게 걸렸다.

 민박 홈페이지에 예약글을 올리면서 위의 이야기를 오버 좀 섞어서 썼더니 주인 아저씨가 고생했다면서 라면을 사주시겠다는데..^^; 민박에 짐을 풀고 민박집 아저씨가 사주신 라면을 먹고 다시 스가모 역으로 돌아오자 시간은 두시 반이 되어 있었다.

 오늘의 계획은 하라주쿠(原宿)-시부야(澁谷)-이케부쿠로(池袋)였다.



스가모 역의 모습



 하라주쿠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메이지진구(明治神宮)였다.
2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북오프에만 관심이 있었지 이런 데가 있다는 줄도 몰랐다.

 특별히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여기 괜찮네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어디서 번개치는 소리가 쾅쾅 들린다. 아 우산 놓고 왔는데.. 날씨도 잔뜩 흐린게 영 불안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유카타를 입은 여인들을 발견한 우리는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을 걸어보려는 찰나에 갑자기 한 무리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나타나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왠지 김샌 기분이 된 우리는 사진이고 뭐고 관둔채 그대로 메이지진구에서 나와버렸다.



메이지진구에서


술통이라는데..


마시면 안된다.


부적 및 오미쿠지 등을 팔고 있던 가게


우리를 닭 쫓던 개 신세로 만든 유카타 여인들과 허탈한 모습의 스미레형(사진 왼쪽)

 

에마(繪馬)



 메이지진구에서 나온 우리는 타케시타도리(竹下通リ)의 이색적인 상점들을 구경하며 북오프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세일러문, 스미레형은 사쿠라대전 관련 음반 및 DVD들만 잔뜩 구입해 갔는데, 나중에 오타쿠 두명 왔다갔다고 수군대진 않았을지;



타케시타도리로 가는길에 찍은 하라주쿠 역


독특한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던 옷가게.


다들 신기하다고 생각했는지 사진을 찍어대는데 점원이 나와서 찍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북오프에서 받은 350엔 할인권. 아직 기간 남았으니 필요하신 분은 말씀하시길

 


 이후의 계획은 요요기(代代木)공원을 거쳐 시부야를 둘러 본뒤, 이케부쿠로로 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요요기공원은 구경조차 못했고, 시부야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요요기 경기장


시부야로 향하던 중. 굳게 닫힌 NHK 스튜디오 파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스미레형



 결국 시부야는 패스하고 곧바로 이케부쿠로로 향했다. 그래도 태정낭만당에는 이전에도 몇번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은걸까. 작년 겨울에 갔을때만 해도 한산한 분위기에 드문드문 손님이 들어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사쿠라카페 입구에서부터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 가요쇼 기간이다 보니, 가요쇼를 관람하고 곧바로 태정낭만당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별수 없이 우리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태정낭만당을 먼저 둘러보았다. V 관련 상품들도 진열되어 있었지만 아직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각자 몇가지 물건들을 구입하고 나왔지만, 아직 우리 차례는 오지 않았다. 한참을 죽치고 앉아있은 후에야 내 이름이 불려 카페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쿠라카페에 들를 때마다 자금 부족으로 홍차나 라무네 한잔 시켜놓고 한시간을 때우던 나였지만, 오늘은 모처럼이니만큼 이곳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후지에다(藤枝)가의 어머니맛 고로케 정식(945엔)



 스미레형은
 아사쿠사 돈카츠 정식(945엔)


(사진은 사쿠라카페 홈페이지에서 무단 전제..-_-)



  을 골랐다.

 스미레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던 중, 어느덧 태정낭만당은 영업이 끝나 폐점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요쇼 기간이라 사쿠라카페는 영업을 더 하는지 손님들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잠시 더 앉아있다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계산을 하는 도중 점원에게 얼핏 이곳에 한국에서의 방문객은 있는 편인지 물어보았더니, 의외로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내일 가요쇼를 보러 간다고 하자 내일 공연이라면 삼인랑이 나오지 않느냐면서 자기일처럼 즐거워했다.

 점원과 좀더 얘기를 나누다 모레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지금 비가 굉장히 많이 내리고 있으니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한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뭐, 비가 온다고!?

 1층에 내려오자 정말 미친듯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하의 게임센터에서 시간을 때우며 비가 멎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좀처럼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빗속으로 뛰어들어 이케부쿠로 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왜 내가 일본에 오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거지??



비를 피하며.. 태정낭만당 주변의 모습



 달리는 도중 한 잡화점에서 우산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를 피하던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나도 간신히 우산 한개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한숨 돌린 우리는 이케부쿠로에서 전차를 타고 스가모로 돌아왔다. 2년전의 방황(?)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왔음에도 길을 헤멘 것이 아쉽긴 했지만 태정낭만당에서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스미레형도 그렇게 느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태정낭만당에서 구입한 것 중 일부인 사쿠라 불량식품. 도너츠는 먹을만 한데 엿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