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原 久美子

피치크린이다~ 파프! 관람기 Day2 (8/10/2008)

GONZALEZ 2008. 9. 22. 00:58

 알람이 울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TV부터 켜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김군과는 11시쯤 신오쿠보에서 만날 예정이라 때문에 급한 건 아니었지만 체크아웃 때문에..

 호텔을 나와 미나미센쥬 역으로 향한 나는 우에노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김군을 만나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바다에서 하자



 우에노에서 JR로 갈아탄 뒤 다시 몇 정거장을 더 달려 열차는 이케부쿠로에 도착했다.

 태정낭만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도 어느새 5개월이 지났는데, 난 여전히 이곳을 잊을 수 없었다. 일본 쪽 게시판의 정보로는 폐점 후에도 한동안 낭만당 내부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GIGO 관계자의 말도 있었고, 언제쯤이었나 GIGO 2층에 쟝폴 인형이라던가 방명록 등이 전시되는 등의 깜짝 부활 이벤트가 있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뭐 이제 와서 그런걸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 추억이 남아있을 때 다시 한번 찾아와 보고 싶었다. 이케부쿠로에 오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히가시구치 선샤인 방면 35번 출구로 나오자 빅카메라에서는 5년 전 이곳에서 처음 들었던 로고송이 흘러나온다. '후시기나 후시기나 이케부쿠로~' 빅카메라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유흥시설과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60층 거리(60階通り) 로 쭉 올라가면 세가 GIGO를 발견할 수 있다.

 GIGO는 지난 3월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 듯 했지만, 딱 하나 바뀐게 있었다.

 더 이상 입구에 태정낭만당 간판은 붙어있지 않았다.


없다..


낭만당 간판 대신 각 층의 시설들을 소개. 7층은 공란.


몇 안남은 태정낭만당의 흔적.



 아직 엘레베이터라던가 바쿠단야키 쪽 입구에는 태정낭만당의 흔적(3월 30일을 기해 폐점하였습니다..) 이 약간이나마 남아있었지만 이것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또 잊혀질 것이다. 실로 무서운 시간의 흐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 쓸쓸히 GIGO에서 돌아선 나는 이케부쿠로역으로 돌아와 다시 신오쿠보로 향했다.

 김군을 만나서는 먼저 필요없는 짐들을 처분했다. 가방 안에는 옷이며 수건이며 (지금 당장은)쓸데없는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전부 김군의 집에 던져버렸다. 나중에 찾으러 오지 뭐.. 

 피치크린의 오후 공연은 7시부터. 그 전의 남는 시간엔 아키하바라에서 놀다 갈 예정이다. 마침 김군도 아키하바라에서 살 게 있었다고 하니 같이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6월에 있었던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아키하바라의 분위기는 전과 조금 달랐다. 휴일임에도 보행자천국은 실시 되지 않고 있었고 전기상가 거리에는 차들이 쌩쌩 지나다녔다. 전단지를 돌리는 메이드 알바들이 가끔 보였을 뿐 코스프레나 길거리 공연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요도바시 카메라 앞에서 아가씨 두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가 누군가 신호를 보내자(아마 경찰이 떴다는) 잽싸게 장비를 챙겨 달아나는 안습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휴일의 차량 통제나 거리 공연 등이 모두 금지되어 버린 모양.

 후 미친놈 한명 때문에..


하지만 여전히 이곳이 아키하바라로구나 라고 느끼게 해줬던 장면들.

레, 레이 카...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이건 내거~'

너나 타!!


4월엔가 새로 오픈한 북오프. 꽤나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하라주쿠점을 돌려줘..)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그런 볼거리들이 없어도 아키하바라라는 곳이 원체 덕후들을 설레이게 하는 곳이다 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면 그럭저럭 시간은 보낼 수 있었다. 하긴 예전에 거리 공연 같은게 없을 때도 하루 종일 잘만 놀다 갔었지. 좀 더 머물러도 될 듯 싶었지만 김군의 한마디도 있고 해서 5시 쯤 신오쿠보로 돌아왔다.

 다시 김군의 집에 들러 맡겨둔 선물(니시하라 씨에게 전해 줄) 을 챙겨들고 스페이스 107로 향했다. 공연이 7시 부터라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중간에 100엔샾 등에 몇 군데 들렀더니 의외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스페이스 107 앞에 도착하자 김군은 도저히 피곤해서 안되겠다며 GG를 선언. 공연이 끝나면 얼굴 한번 보고 가려고 했는데 그 시간엔 자고 있을 것 같다는 김군의 말에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김군 수고했어..

 김군과 작별한 뒤 시간이 시간인만큼 저녁을 먹어야 겠는데 식당에 가기에는 조금 빠듯했다. 별 수없이 편의점으로 뛰어가 빵과 쥬스를 사와서 3분 만에 먹어치운 뒤, 100엔샾에서 사온 엽서에 니시하라씨에게 전할 메세지를 적은 뒤 서둘러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 시작까지는 15분이 남아있었고 관객들은 거의 다 입장한 상태였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시오츠카 코헤이 씨의 등장과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다.

선물 챙기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놓여있던 화환들. 사쿠라대전 프로젝트 팀으로부터..


아오니 프로덕션 사장님께서 소속 성우 3인방(쿠미코 씨 마유미 씨 카즈에 씨) 에게 화환을 보내왔다.


타나카 코헤이 선생이 보낸 화환도..

 

 사실 이날은 천추락도 아니고 해서, 특별히 전날 공연과 다른 점은 없었다. 공연 자체에 대한 감상도 어제와 크게 차이는 없을 것 같고.. 다만 몇가지 부분에서 약간 다른 애드립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건 있었다.

 특히 다나카 마유미 씨가 보여준 '관객과의 애드립' 은 단연 이 공연의 백미였다.

 9일 공연 때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 한명을 붙들고

마유미 씨: 내가 27살로 보여 72살로 보여?
관객: 스.. 스물일곱입니다!
마유미 씨: 고마워~ (라면서 관객 무릎 위에 앉아버림;;)

 이런 광경을 선사하면서 객석을 뒤집어 놓았었는데, 오늘은 도중에 시오츠카 코헤이 씨에게 저지당하면서 막이 내리고 그대로 씬이 끝나는 듯 싶었으나..

 곧 막을 헤치고 객석으로 뛰어드는 마유미 씨였다.

마유미 씨: 내가 27살로 보여 72살로 보여?
관객: (힘겹게).....스물일곱!
마유미 씨: 그 망설임은 뭐야!!!

 니시하라 씨는.. 더 이상 언급하면 입아프니 여기서는 패스.

 ..하고 싶지만 굳이 얘기를 하자면 군무동작에서 뒷걸음 하다 발을 헛디딘다던가, 그 뒤 혼자 안무를 틀린다던가.. 뭐..
하지만 그런 모습이 더..^^


공연이 끝나고 나서. 니시하라 씨가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NHK 방송에서 보낸 화환.


일부 출연진들이 복도로 나와서.


노자와 마사코 씨(손오공 목소리의 그분) 도 꽃다발을.


이름이 가려졌는데 성우 타케다 에리 씨가 보낸 화환


상품은 이게 전부. 티셔츠 부채 사진


 
 공연이 끝나고 접수처에 앉아있던 스탶에게 니시하라 씨에게 전해줄 선물을 건네준 뒤 또다시 이런때 쓰는 레퍼토리를 늘어놓다가(저는 이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 어쩌구저쩌구..) 출구 쪽으로 올라오자 밖은 난데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행기야 새벽에나 출발하니 좀 늦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비를 피하고 있는 동안 출연진들께서도 하나둘 올라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비가 조금 잦아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뒤 현관 쪽에는 나를 포함해 대여섯명 정도가 여전히 머물고 있었고, 언제쯤 출발할건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계단 아래에서 뭔가 선물꾸러미 같은 걸 무겁게 짊어진 여성분이 혼자 올라오고 있었다.
'어.. 어? 설마..?' 잠시 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분은 바로 니시하라 씨였다!!!!

 진짜다. 진짜 니시하라 쿠미코 씨가 내 눈 앞에 있었다. 언제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지만 정말로 이루어질 줄이야..

 
 하지만 말이 안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마음과는 달리 입이 열리질 않는다.

 갑자기 벙어리가 되버린 나는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이런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니시하라 씨는 우리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시고는 총총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우두커니 니시하라 씨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해져 있다가 더 볼 것도 없이 곧바로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후회와 분노와 후회와 분노와 후회와 분노와. 왜 거기서 용기를 내지 못한 걸까. 

 스스로가 한심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공항에는 11시에나 도착했지만 이륙까지는 6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비좁은 하네다 공항 국제터미널은 올빼미 여행객들과 제주도로 놀러가는 일본인들이 겹치면서 서있는 것 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이 허탈함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기다렸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흘러갔고 비행기에 탑승하면 맥주나 잔뜩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심신이 지쳐버린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뻗고 말았다.

 넝쿨째 굴러들어온 행운을 제발로 걷어차면서 '피치크린~' 의 뒷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버렸다.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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