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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코미케에 도전 (2011.8.13)

GONZALEZ 2011. 8. 26. 21:51

 가끔은 내가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 갈 일 없을 줄 알았던 코믹마켓을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보러 갈 생각을 하다니.
날 코미케까지 가게한 사연은 아래에 적겠지만 아무튼 제정신이 아닌건 확실하다.

 원래는 전날 저녁 9시부터 잠을 푹 자둔 뒤 새벽 4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가 뒤척뒤척 하다보니 밤 12시에 잠이 깨버렸다. 다시 잠을 청해도 눈은 감기질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넷 좀 만지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되어간다.. 결국 세시간 남짓 자고 출발하게 되는 셈인데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앞이 막막하다..

 차고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오자 밖은 캄캄하고 새벽이라 아직 날씨는 선선했다.
빅사이트가 있는 오다이바는 자전거로 몇 번 가봤기 때문에 별로 문제 될 건 없었는데, 입장 전에 줄만 몇시간 씩 서야된다는 코미케를 이 무더위 속에 자전거 타고 체력 다 빼면서 가도 될 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난 한번 마음을 먹으면 그 주변상황이 어떻든 실행하고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그래서 후지산 가서 개털됐다) 일단 가기로 한 이상 계획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의외로 일본인들 포함해서 '자전거는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오다이바로는 못 간다' 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당장 내 친구 한명도 비슷한 이유로 코미케 참가를 포기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갈 수 있다.
자전거로 레인보우 브리지를 못 건너는 건 사실이지만 긴자에서 하루미도오리(晴海通り)를 통해 카치도키바시(勝ちどき橋)를 건너면 오다이바로 진입할 수 있다. 신주쿠에서의 주행거리는 15km 정도.

클릭하면 확대

새벽 4시에 출발. 밖은 아직 캄캄하다.

큰길로 나왔다. 여기는 메이지도오리(明治通り)

신주쿠 산쵸메에서 좌회전 해서 신주쿠도오리(新宿通り)로 진입.

슬슬 동이 터오르기 시작한다.

여기가 아마 요츠야 근방

쭉 달리면 한조몬이 나오는데, 코쿄(皇居)가 있는 곳이다.

사쿠라다호리(桜田濠)

히비야를 지나 긴자로 간다.

옆에 제국극장이 보여서 한 장

긴자에서.

밤에 갈때는 늘 북적댔는데 주말 아침이라 사람은 없다.

츠키지. 아침부터 맥주 생각나게 하네.

이 카치도키바시를 건너면 오다이바로 갈 수 있다.

바다~

자전거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여기서 오다이바까지는 조금 더 가야한다.

자비심 없는 업힐. 그냥 끌바로 가는게 속편하다.

아직은 시원하지만 곧 해가..

야호 신나는 다운힐

계속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빅사이트! 하지만 바로 그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건너편에 대관람차가 보인다.

오다이바해변공원 앞 100엔샾에서. 어차피 빅사이트 근처는 다 초토화 상태기 때문에 먹을건 여기서 사간다.

목적지는 여기.

이곳에 자전거를 세워 둘 수 있다.

언제 봐도 대견한 나의 마마챠리.


 오다이바 해변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평소에 자전거로 오다이바를 가면 두 시간 정도 걸리곤 했는데 사람 없는 새벽에 나와서 그런지 30분을 단축했다. 근처의 100엔샾에 들러 콜라와 먹을것을 구입한 뒤 공원 주륜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빅사이트로 향했다.

 사실 오다이바 해변공원에서 빅사이트도 그리 가깝다고는 할 수 없어서 모노레일로 다섯정거장 거리다.(빙 돌아가는 거지만)
내가 이 날씨에 부득부득 자전거 타고 온 것도 동족(?)들로 가득한 지옥철에 시달리기 싫다는 것과, 모노레일 차비가 아깝다는 이유에서 였으니.(신바시에서 타고 오면 370엔)
뭐 그래도 금방 가겠지 했는데 길이 좀 헷갈려서 빅사이트까지 걸어가는 데도 30분 이상이 걸렸다.

 팔레트 타운 근처에 이르니 이전까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이타샤라던가 심상치 않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빅사이트는 보이지도 않는데 근처의 자판기는 이미 다 털린 뒤였고 화장실마다 길게 늘어서있는 줄은 앞으로 다가 올 험난한 시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빅사이트에 도착한 나는...


맨날 밤 아니면 새벽에 오니 한가한 모습만 본다.

이타샤!

엄마...


 뭐 코미케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실제로 그 현장 속에 서 있게 되니 그냥 할 말이 없었다.
자원봉사자의 유도를 따라 줄 후미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럭저럭 선선했던 날씨는 해가 떠오르면서 땡볓이 내리쪼이기 시작했다.
빅사이트까지 걸어올 때 좀 헤멨다고는 하지만 아직 시간은 6시 30분도 되기 전이었다.
앞으로 세시간 넘게 이러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어졌다.

 주위를 보자 다른 참가자들은 코미케 한두번 와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낚시의자에 걸터앉아 몸 여기저기 냉각스프레이를 뿌려대며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나도 DS를 꺼내 들었지만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있는 것도 불편하고 날이 너무 뜨거워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뉴비인증
그래도 한두판 깨다보니 시간이 가긴 가더라.

 자원봉사자들은 앉아서 대기해 달라고 했지만 두시간 넘게 그러고 있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입장 한시간 남짓 남겨두고 그냥 일어나 버렸다. 뒤를 돌아보자 역시 다들 힘든지 나 말고도 거의 대부분이 서있는 상황이었는데 줄 정리가 어느정도 되서 그런가 별 터치를 하진 않았다.
9시 30분 쯤 되었을 때 저 앞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면서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대열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엇 이제 입장해도 되는건가?

 내 앞에도 까마득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질서 있게 입장을 시작해 10여분 만에 빅사이트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입장렬은 입구 앞에서 동 전시관과 서 홀, 기업 부스 쪽으로 나눠졌는데 나는 먼저 동 전시관으로 향했다.
먼저라기보다는 내가 갈 데가 거기 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요즘 만화에 관심도 없다면서 부득부득 코미케를 보러 온 이유를 밝혀야 될 것 같은데..
이게 다 코헤이 선생님 때문이다.

닥쳐! 감히 본좌 앞에서 망언을 하다니!



 블로그를 시작하시면서 흔히 알려진 모범생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활동적이고 때로는 4차원적 행보를 보이시던 코헤이 선생님이, 작년 12월 겨울 코미케를 시찰(?)하고 오시더니 올 여름 급기야 직접 부스를 내어 참가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부스명은 무려「다나카 코헤이」(...)
참가는 13일(토요일) 하루 뿐으로, 핀란드의 1류 뮤지션들과 작업한 1000장 한정 사인 CD를 판매하실 예정이라고 한다.
코헤이 선생님의 전격 참전을 두고 모 처에서는 '동방과 다나카의 대결!' 이라는 표현까지 썼다는데, 뭐 결국 죽어나는 건 이거 때문에 코미케까지 와야 될 팬들이다.

「다나카 코헤이」부스는 네임드에 대한 코미케 측의 배려에서인지 벽 쪽 자리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찾아가는 건 쉬웠다.
1000장 한정이라지만 설마 이거 사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어서 수북히 쌓인 CD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코헤이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걸,「다나카 코헤이」부스 앞에는 이미 길다란 대기열이 생겨있었다. 이런.. 손 몇번 잡아봤다고 내가 코헤이 선생님을 너무 만만한게 본 건가. 후미열에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내 뒤에도 계속해서 행렬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한가지 재미있던 건 전날까지 카탈로그를 구입하지 못했다면서 못간다는 트윗을 하던 일본인 친구 료마 군이 내 한참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예상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여유 있게 1000명 안에는 들 수 있었다. 설마 선생님이 직접 시디도 파나 했는데 판매 자체는 도와주는 분들이 하고 있었고, 코헤이 선생님은 그 옆에 서서 구매자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CD를 구입해 코헤이 선생님과 악수를 한 뒤(워낙 바쁘셔서 따로 말을 걸지는 못했다) 부스를 빠져 나오자 이제서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입장하기 전에 옆에 있던 사람들은 부스 배치도 펼쳐놓고 열심히 동선이랑 짜고 그러던데 난 이거 하나 보러 왔기 때문에 다른 데는 갈 일이 없었다. 이대로 집에 가도 상관은 없지만, 이왕 온 건데 구경이나 좀 하다 가기로 하고 나는 전시관에서 나왔다.


입장이 시작되었다.

성지순례의 현장

이제야 건물 앞으로.

드디어 빅사이트 입장.

당연하지만 들어간다고 끝이 아니다.

코헤이 선생님 레이드

내가 저 줄들에 설 일이 없다는 것에 감사

홀 분위기는 대략 이랬다.

볼일 다 마치고 나온 지금도 입장하고 있음

「다나카 코헤이」부스의 한정 CD는 개장 50분 만에 완매 됐다고 한다.


 동 전시관을 나와 기업부스 쪽을 잠깐 기웃거리다가 아는 것도 없는데 사람은 많고 괜히 줄 서있어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에 코스프레나 보기로 하고 광장 쪽으로 나가려는데, 어떻게 된 건지 광장으로 나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빅사이트 입구 쪽에는 화살표로 광장 위치가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쪽으로 가는 줄을 섰더니 도로 동 전시관으로 가는 줄에 섞여들어서 입장할 때 보다 두배는 늘어난 인원들 속에서 꼼짝없이 떠밀려 가야했다. 전시관 안에서 위치 좀 확인하려고 잠깐 서 있으려니까 5초도 지나기 전에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길막지 말고 움직이라고 쪼아댄다.

 날도 덥고 숨쉬기도 힘들고(농담이 아니라 정말 바깥과는 공기가 다르다)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번만 찾아보자 라는 마음에 다시 입구로 나와 줄을 살펴보자 코스프레 광장으로 가려면 동 전시관으로 가는 줄 왼쪽으로 바짝 붙어가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따로 줄을 나누지는 않는다)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잽싸게 왼쪽으로 안붙으면 동전시관으로 휩쓸려감



 시행착오 끝에 코스프레 광장으로 나오자 말만 광장이지 별로 넓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죄다 모르는 만화의 모르는 캐릭터들에, 거기다 뭔 아저씨들이 여성 캐릭터 코스프레를 그렇게 하고들 돌아다니는지..
나도 한때는 코스프레 사진 찍는답시고 카메라 들고 코믹이니 아카니 하는 행사마다 싸돌아다니던 시절이 있는데 그때 최고 인기있던 게 봉신연의랑 디지캐럿이니 도대체 언제적 얘기냐-_- 

 그래도 한 시간 정도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나름 재미가 붙었는데, 더 머물기에는 날이 너무 더웠다.
새벽부터 그 짓을 했으니 지치기도 하고 땀도 너무 많이 흘려서 이대로 있다간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어디서 좀 쉬고 싶었지만 광장 안은 앉을 곳은 커녕 그늘 조차 없는 하드코어한 장소였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려면 회장에서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듯 마는듯한 기분으로 빅사이트를 나오자 더 이상 뻘짓을 했다간 죽어버리겠다고 온 몸이 경고를 해대고 있었다. 나 역시 이대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직감하였기 때문에 팔레트 타운 아무데나 들어가서 해 저물때까지 쉬기로 했다.
빅사이트 근처에도 여기저기 코미케를 보러온 사람들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걸 보면 굳이 멀리 떨어진 오다이바 해변공원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정 불안하다면 국제전시장정문 역에서 한 정거장인 아오미 역 근처에도 주륜장이 있으니 거길 이용해도 될 것 같고.. 뭐 또 자전거 타고 여길 온다고 할 때의 얘기지만.

 주말 오후였지만 날이 더워서 그런지 팔레트 타운은 한가한 모습이었다. 에어컨이 풀가동되는 메가웹에 들어가 앉을 만한 데를 찾아봤더니 뜬금없이 안락의자가 하나 놓여있길래 잽싸게 눌러앉아서 그대로 두시간을 잤다.
자고 일어나 옆에 있던 맥도날드에서 내가 좋아하는 쿼터파운더치즈 세트를 먹고나니 몸에 좀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직 해가 저물진 않았지만 체력 회복한 김에 돌아가기로 하고 오다이바 해변공원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와 다시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은 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고.. 길을 잘못 들어 멀리 돌아가는 삽질을 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집에만 간다는 생각으로 무한 페달질 끝에 무사히(?) 귀환. 이게 다 아직 20대라서 가능한 일이다. 내년부턴 절대 못함.

<자전거로 코미케 도전기 -끝- >



※ 아래는 그날 찍었던 코스프레 사진들.
후달리는 똑딱이로 바주카포 카메라들 사이에 꼽사리 껴서 몇장 찍긴 했는데 어느 작품의 어떤 캐릭터의 코스프레인지는 잘 모릅니다.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그리고 플레이어분들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은 자제해 주세요.
 

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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