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1~2015

2013 토쿄 여행기 Day 5 -아키하바라 外- (2014.01.01)

GONZALEZ 2023. 12. 2. 03:42

10년 전에 다녀온 여행기를 아직도 붙들고 있는 건 무슨 경우인가 싶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니 이렇게라도 끝을 봐야겠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도 사쿠라대전 관련 이벤트를 모두 소화하고 난 뒤 이후의 일정이 비어있었다. 어거지로 눌러앉아있느니 귀국일을 당겨볼까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토쿄 근교의 갈만한 곳을 찾아본 끝에 카와고에를 끼워넣었지만 여전히 하루가 남아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작년(2013년)에 카스카베로 럭키스타 성지순례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갈 곳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인터넷을 뒤져 치치부 라는 곳이 애니메이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이하 아노하나)' 의 로케지로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여행 사흘 앞두고 1화부터 최종화까지 정주행. 애니를 보고 나서 성지순례를 가는게 아니라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 애니를 보는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 아무튼 벼락치기로나마 준비를 했으니 이제 떠날 일만 남아있었지만.

 

이 모든 호들갑이 무색하게, 그동안 쌓여온 피로+감기로 인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사실 아트 페스티벌이나 기타 등지에서 구입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니 의욕이 없어지기도 했었다.(이날은 숙소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결국 아노하나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타케야마와 트위터로 DM을 주고 받다가 2시쯤 아키하바라 요도바시 카메라 앞에서 만나서 놀기로 했다.

 
겨우겨우 일어나 짐을 정리하는데 김군은 오늘도 알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짐을 클럽세가에서 챙겨온 커다란 봉다리에 넣었는데 어찌어찌 들고 다닐수는 있을것 같았지만 영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김군의 여자친구가 슬그머니 다가와 양판점의 커다란 종이백을 하나 건네주었다. 짐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가려고 하자 (김군의)여자친구가 어제 줬던 감기약을 다시 하루치 챙겨주었고 나는 김군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타케야마와 만난 뒤로는 뭐했는지 거의 기억이 안난다. 찍은 사진도 두장 밖에 없다. 대충 미스터 도넛에서 시간 때우고, 야마다 피규어를 찾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피규어샾을 돌았다. 만다라케에서 야마다 넨도로이드(3000엔)를 발견하긴 했는데 정작 짐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만사가 귀찮아져서 구입하지 않았다;

그 밖에 클럽세가에서 UFO캐처를 한다던가.. 간만에 사이제리야에서 저녁을 먹고 좀 더 놀다가 이날 신세지기로 한 타케야마의 집으로 갔다.

 

급하게 숙소를 구해야 했고 요행히 김군의 집에서 이틀을 보낼 수 있었지만 여자친구랑 같이 사는 곳에서 이 이상 머무르는 것은 아무래도 민폐였기 때문에, 타케야마에게 조심스럽게 현재 내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더니 흔쾌히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 주었다.

 

 

 

찍은 사진 중 한장.

 

 

 

닌교쵸에 있는 타케야마의 집은 졸업식때 한번 간적이 있었는데 빌딩 한채를 통째로 타케야마네가 소유하고 있었다. 타케야마네 집은 최상층 한층을 다 쓰고 있었고 집에서 키우는 사토코라는 이름의 강아지의 집이 과장 안하고 내 원룸만큼 넓었다.

 

타케야마의 집에 들어가니 온가족이 한테이블에 모여서 케잌까지 준비해둔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전날 신오쿠보에서 사온 선물들을 한국에서 가져온거라고 거짓말을 하며 건네드렸다-_- 

타케야마네는 삼형제였는데(타케야마가 막내) 장남이 나랑 동갑이었고 이미지가 뭔가 만화나 아니메에 나오는 삼형제 같았다.

열혈 타입의 장남
냉정 타입의 차남
두뇌 타입의 삼남

타케야마의 어머니는 거의 2년 만에 보는 나에게 조금 살이 찐게 아니냐며. 역시 어머니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사실 일본에 있을 때의 나는 거의 해골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한국의 교수와도 연이 있는 것 같았고 여러번 나에게 뼈가 있는 질문을 던졌는데, 만족스러운 대답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나로서도 아쉽다.

 

사토코는 여전히 나만 보면 계속 짖었다.

 

가족분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부러웠던 점은 가족들 사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화나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옛날 아니메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타케야마가 (내가)세일러 비너스를 좋아한다는 걸 가족들에게 폭로하기도 했다ㄷㄷ 아무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대접에 부담 백배였다;;


밤에는 타케야마와 다음날 일정에 대해 상의했는데 원래 계획인 하치오지에 있는 료호지라는 곳에 갈지, 먼데 가지말고 그냥 아키하바라를 한번 더 갈지 고민을 하다 결국 료호지로 가기로 했다. 아키하바라를 다시 가봤자 또 피규어샾이나 게임센터나 어슬렁거릴 것이 뻔하기에.

결정을 하고 나서도 우리는 유튜브를 보며 아니메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거의 새벽 네시나 되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