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간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지난 이틀동안 새벽 4시가 되도록 잠을 못이뤘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_- 오늘은 오후에 집에 가는 걸 빼면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난 마음놓고 늦잠을 잤다.
확 공항가기 전까지 쭉 자둘까 싶었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에 이불을 걷고 일어나자,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할 일이 없다고는 했는데, 억지로라도 찾아보자면 한가지 있긴 있었다.
김군과 함께 기숙사를 나서자 밖은 별로 춥지도 않고 거리는 늘 보던 것과 똑같은 모습에 크리스마스 분위기 같은 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번화가로 나온 우리는 신오쿠-오쿠보 역 사이에 밀집해 있는 파칭코 가게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할 일이라고 얘기했던 게 바로 파칭코-_- 사실 파칭코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고스톱도 못치는데 파칭코는 무슨.. 그런 주제에 왜 자다 일어나서 파칭코 타령이었는가 하면.
그저 사쿠라대전, 사쿠라대전 파칭코가 한번 해보고 싶었다.
쯧쯧 집에서나 하지
신오쿠보의 파칭코 가게들을 몇군데 들러보았으나 사쿠라대전은 보이지 않았다. 인기가 없는건지 가게 규모를 보면 한두대 쯤은 있을 법도 한데 야속하게도 점원들의 대답은 'NO' 였다. 신오쿠보에서 허탕을 친 우리는 좀 더 큰 곳을 찾아보자는 생각에 아예 신주쿠로 나가보기로 했다.
신주쿠에 도착한 우리는 눈에 띄는대로 파칭코 가게를 들러보았으나 여기라고 별 다를 건 없었다. 지난 여름 히로이씨까지 나와서 광고를 해댔던 결과가 겨우 이것이었단 말인가..! 솔직히 널리고 널린 파칭코 가게들 중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자 처량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파칭코에 사활을 거네 마네 하는 신세가 된 사쿠라대전과, 그걸 찾아 신주쿠를 헤메고 있는 난 말할 것도 없고.
업ㅂ어
아키하바라를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무리라고 판단한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나마 가까운 이케부쿠로로 향했지만, 기대도 안한만큼 결과는 똑같았다. 이때 시간이 아직 12시 30분이었는데 이제 뭐하지..
아 여기 이케부쿠로였지.
나는 김군을 보내고 홀로 어딘가로 향했다.
이젠 틀렸어
태정낭만당..
나는 또 왔다-_-
동물들의 귀소본능 마냥, 갈곳을 잃어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낭만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12월 25일의 태정낭만당은 생각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살 것도 없으면서(이제 돈도 업ㅂ었다.) 괜히 낭만당 안을 어슬렁 거리며 점원이랑 아이리스 등신대 피규어 가격 얘기를 하며 낄낄대다가 점심이나 먹고 갈 생각으로 사쿠라 카페로 향했다.
사쿠라 카페는 마침 오늘 생일을 맞이한 츠바키의 생일기념 메뉴를 준비중이었다. 이런 특별메뉴를 다시 먹게 될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므로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주문을 넣었다.
그래서 먹은 것은
츠바키 생일기념 아라레 팔곡 챠즈케(あられ八穀茶漬け 650엔)
실제 먹은 거랑은 좀 다른데 아무튼 이런 느낌(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시느 논알콜 칵테일(819엔)
(사진출처 태정낭만당 홈페이지)
그리시느 코스터
챠즈케는 이번에 처음 먹어보는데 맨밥위에 찻물을 부어서 그 위에 몇가지 후리카케를 뿌려먹는 것이었다. 정말 일본에 와서 식도락 기행은 딴데 갈 필요도 없이 사쿠라 카페에서 다 해 보는듯-_-b
매일 출퇴근하는 서울역보다 이케부쿠로가 더 친숙하다 이제는-.-
도, 도촬;
2시 쯤 사쿠라카페를 나와 다시 신오쿠보로 돌아온 나는 이제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기숙사에서 좀 늦게 나왔는데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리타로 갈때는 보통 닛포리에서 케이세이선으로 갈아타게 되는데,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30엔이 더 비싼 우에노 행 표를 구입했다.
우에노에서 갈아타게 되면 돈도 돈일 뿐더러 아예 역사 자체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또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더 걸리 뿐더러 어떻게 봐도 이득 볼게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뭐에 홀린듯이 우에노로 향하고 있었다.
3시가 조금 넘어 우에노에 도착한 나는 나리타로 가는 열차표를 사들고 플랫폼으로 내려갔는데, 과연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들 어딜 그렇게 가는지 승강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비어있던 한자리를 차지한 뒤 우에노를 출발해 한 정거장 뒤인 닛포리에 도착했을 때 열차는 이미 만원이었다.
평소대로 닛포리에서 탔으면 한시간 반동안 꼼짝없이 서서 갈뻔했다 휴..
우에노에서. 갈아타러 가는 도중에 한장
공항에 도착했을때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귀국편 비행기에 탑승해 자리에 앉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유독 쓸쓸해 보이는 것이 창가 자리라고 늘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집에 오는 길은 너무 길어서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이거 노래가사 아닌가-_-)
혼자서 쓰는 안습 스토리도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다.
집에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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