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6~2010

2007 도쿄 안습 스토리 Day2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 (12/23/2007)

GONZALEZ 2008. 2. 8. 04:50

 분명히 미친듯이 졸려야 되는데 이상하게 잠을 설치고 만 나는 아침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흐느적대고 있었다.

 아침에 같이 아키하바라에 가자던 김군은 잘거라면서 일어나지 않았고, 일단 밥부터 챙겨먹으려 하는데, 정육코너에 일하는 김군 덕분에 나는 아침부터 소고기를 먹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김군이 잠이 다 깨버렸다면서 같이 나가자고 한다.@a@;

 기숙사 건물을 나서자 하늘은 해가 떠있는데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린 어이없어 하면서도 어제처럼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다시 기숙사로 올라가 우산을 하나씩 챙겨들고 나왔다.

 하지만 그 뒤로 비는 두번 다시 내리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뭥미


오쿠보역 가는 길


역에서


날은 맑게 개어 있다


 아키하바라에 도착하자 한시쯤 되었는데, 길은 막아놓았지만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코스프레라던가 노상 라이브를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 청년이 축구공을 들고 뭔가 대단한 거라도 보여 줄 것 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으더니 시시한 묘기 몇가지만 반복하며 시간을 질질 끌길래 하나 둘 뒤돌아서는 광경이 있긴 있었다.  

 두시에 일이 있다는 김군을 보내고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특별히 재밌는 것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게임샾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며 CD나 들춰보고 있었다.

 다시 거리로 나오자 여전히 거리에서는 이렇다할 퍼포먼스들은 펼쳐지지 않고 있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코스플레이어들과 몇몇 길거리 밴드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지만 비주얼이 확 와닫는 팀도 없고 노래도 별로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호응이 거의 없었다.

 썰렁한 거리를 바라보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지난 7월 강방호님을 설레이게 했던 그들, GANG BANG PARTY(이하 GBP) 였다.


심심한 아키하바라


뭐하니


앗 이 아가씨는...


이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강방호님 지못미ㅜㅜ



라이브 영상 중 하나. 'Happy Sunday' 라는 곡



 다른 인기밴드들이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날 GBP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나 역시 다시 보게 되어서 반갑기도 하고 안 그래도 아까부터 '뭐 신나는 거 없어요?' 하는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대개 이런 밴드들의 공연 방식은 '라이브 시작(3, 4곡 정도 노래)→5분 간 밴드 및 공연 홍보→20~30분 휴식→라이브 재개(레퍼토리는 조금씩 바뀔수도 있음)' 이런 사이클을 따라가는데, 나도 여기에 맞춰 공연을 구경하다가 노래끝나면 잠깐 다른 데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구경하고 뭐 이러면서 오후내내 그러고 있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이들의 CD를 사고 보컬 '토모리' 양과 악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뭔가 점점 이번 여행의 목적이 뭔지 알 수 없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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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 일본 왜온거예요?



 한국과의 시차가 30분 있긴 하지만 5시도 안됐는데 이미 주위는 캄캄해진 뒤였다.

 GBP는 마지막 라이브를 마친 뒤 음향도구들을 챙겨서 떠났고 난 그 뒤에도 괜히 한시간 정도 더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불과 2년 여 전만 해도 무한체력을 자처하던 나였는데 운동부족 탓인지 오늘따라 너무 힘이 들었다. 가방을 메고 있는 어깨는 빠질 듯 아프고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이 확실히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들고 있던 짐도 꽤 많았기 때문에 도저히 이대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결국 나는 바로 다음 예정지로 가지 못하고 일단 신오쿠보로 돌아와 기숙사에 짐들을 다 던져놓고 나와야 했다.


어둠이 깔린 아키하바라


빠칭코점도


소프맙도 번쩍번쩍


예수천국 불신지옥


요도바시 앞에서


 처음 여행계획을 짤 때 도쿄는 가능한 배제하려고 했었다.

 이미 도쿄 안에서 갈 만한 곳은 다 가봤고(물론 안 가본 곳도 많지만) 특별히 공연이라던가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만큼 이번에는 다른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히로시마, 센다이, 홋카이도 등등 여러 지역들을 두고 고민해보고 그 중에 꽤 세부적인 일정까지 짜본 곳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도쿄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여행목적이 뭔지 알수 없다고 했었는데 사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태정낭만당에 왔다는 말입니다.


모르겠어



 태정낭만당은 내게 마약과도 같았다.

 그동안 수차례 일본을 오가면서도 이곳 때문에 기존의 일정을 깨뜨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2003년 처음 태정낭만당에 왔을 때 끝없는 고뇌 끝에 다합쳐서 1000엔어치의 상품만을 구입해갔던 소심남이었던 나는 갈수록 씀씀이가 대범해져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여행경비의 대부분을 낭만당에 쏟아붓고 있었다.

 이 열정과 돈을 다른 데 놀러가는데 썼으면 일본일주를 해도 몇번은 했을 것이다.

 쇼핑을 마치고 계산을 하는 나에게 카운터에서 무슨 이벤트 기간인지 'サクラくじ' 라는 종이를 건네준다. (돈을 좀 많이 써서 몇십장 받았다-.-)

 이게 뭐지 하면서 사쿠라 카페로 들어가 주문한 것은


사쿠라의 주먹밥 세트
(さくらのおにぎりセット. 525엔)

157엔 추가해서 하나 더 먹었다. 명란젓, 매실, 연어 세가지맛.



사쿠라 논알콜 칵테일(819엔)

(사진출처 태정낭만당 홈페이지)

사쿠라 코스터
 


 이었는데, 논알콜 칵테일이야 음료수니까 뭐 그렇다쳐도 사쿠라 주먹밥은 인간적으로 너무 맛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사쿠라카페 빠돌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편의점 삼각김밥보다 300배 정도 맛없었다. 아무튼 비추 명단에 추가. (현재 등록메뉴 마리아 보르시치, 제미니 베이글)

 끔찍한 맛의 주먹밥을 억지로 먹어치우고 카페 안에서 죽치고 있다가 문득 아까 받았던 'サクラくじ' 가 뭔지 궁금해져서 지나가던 점원을 붙들고 물어보니 12월 31일에 추첨을 해서 상품을 주는 이벤트라고 한다. 한마디로 일종의 복권같은 거였다.(くじ)

 하지만 난 25일 귀국하는데(...)

 수십장의 사쿠라쿠지는 잠시 날 설레게 했지만 곧 아무 쓸모 없는 종이조각이 되고 말았다.


난 이곳을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화장실도 갔다가



 10시쯤 신오쿠보로 다시 돌아온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어제 잠도 별로 못 잔데다가 오늘 체력적인 한계를 여러번 경험하면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숙사로 올라와 대충 정리를 한 뒤 자리에 누웠는데, 좀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더니만 이제는 잠을 청하면 청할수록 머리가 맑아져 오는 것이었다=ㅂ=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깨버리는 것인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밤새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도 나의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한참 이불을 붙들고 씨름 하는 사이에 김군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새벽 4시 퇴근)

 ........

 잠 좀 자자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