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6~2010

2007 칸사이 폭풍투어 Day1 -교토, 코베, 오사카- (10/6/2007)

GONZALEZ 2007. 12. 9. 23:49

 정규편이 아닌데다 비행거리도 짧아서 그런지 비행기 안에서는 이렇다할 편의가 제공되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기내식은 그렇다쳐도 맥주는 줘야지..

 한시간 반이 될까말까 한 짧은 비행 뒤 칸사이(関西) 공항에 도착했다.  

 물론 잠은 한숨도 못 잤다..ojL

아 졸려죽겠네



 게이트를 나와 입국수속을 기다리는데, 여기서 우린 첫번째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입국카드에 일본에 머무를 동안 지낼 주소지와 전화번호를 적어야 하는데, 민박 바우쳐 및 모든 여행관련 서류들이 따로 보내버린 짐가방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당황한 우리는 곳곳에 비치된 여행안내 팜플렛 등을 주워들고 혹시 주소로 써먹을만한 데가 없나 찾아봤지만 그다지 도움되는 내용은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어차피 관광객이란건 저쪽 직원들도 다 알고 있을테고, 헛소리만 안한다면 설마 쫓아내기야 하겠나 란 생각에 일단 대충 아는대로만 주소를 적어두고 혹시 태클이 들어오면 어떻게 잘 설명해보기로 했다.

'나 입국 좀ㅜㅜ' '안 돼!'

 


 결의를 다진 뒤 각자 줄에 서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민박 이름과 지역번호만 적혀있는 문제의 입국카드를 받아든 입국심사대 직원은 '아 또야..?' 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옆에 있던 카드뭉치를 뒤적거리더니 그 중 한장을 내민다.

 받아들고 보니 카드엔 우리를 애태우게 했던 민박의 자세한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앞서 입국심사를 받은 이들 중 우리같은 사람들이 많았었는 듯..;;

 셋 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니 별 것도 아닌 걸 괜히 호들갑 부렸다며 관수 형이 핀잔을 준다. 주소 대충 썼다가 대박 낭패를 겪었던 나리타의 기억은 여전히 머리 속에 있는데.

 공항에 연결되어 있는 난카이(南海) 선 전철역으로 이동해 오사카 시내로 가는 전철을 탔다. 여행은 이제서야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이미 몸이 무겁고 찌뿌드드한 게 험난한 하루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난바(難波) 역에서 내려 킨테츠 난바(近鉄難波) 쪽의 코인락커에 짐들을 때려박은 뒤, 일단 아침부터 먹은 다음 시작하기로 하고 역 밖으로 나와 우리의 친구 요시노야(吉野家)를 찾아갔다.



요시노야에서. 내가 먹은 챠슈동(チャーシュー丼)


관수 형은 무난하게 부타동(豚丼)으로.


아침부터 정식을 선택한 이나바형.




 끼니를 해결하고 우메다(梅田) 역으로 가 한큐(阪急) 전철의 열차에 올라탔다.

 폭풍투어의 첫번째 목적지는 교토(京都)~

 자리에 앉아있으니 아침을 먹어서 조금 낫긴 했는데, 여전히 머리는 멍하고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벌개진 눈을 비비고 있는 나에게 이나바형이 교토까지 가는 동안 자둘 것을 권했고, 평소 차안에서 잠을 못자네어쩌네 하던 나는 눈을 감기가 무섭게 꿈나라로 떠났다.

 한 40분 정도 꾸벅꾸벅 졸다가 자다가 하는 동안 이나바형이 깨워 일어나보니 열차는 카라스마(烏丸) 에 막 도착하려던 참이었다. 이곳에서 카라스마선으로 열차를 갈아탄 뒤 한 정거장을 더 가자 교토역에 도착했다. 작년 겨울 교토에 갔을때 종점인 카와라마치(河原町) 까지 갔다가 다시 교토역을 찾아 헤메느라 두시간을 그냥 버린 적이 있었는데, 역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



열차 안에서.


교토역을 나오면 눈 앞에 보이는 교토 타워.

 



 교토역 앞의 관광안내소에 들러 교토시 지도를 받아들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아까 열차 안에서 조금 자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제부터의 살인적인 일정을(내가 짜긴 했지만-.-) 과연 소화해낼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와중에 근처의 음료수자판기에서 오로나민 C를 발견했다.

 일본에 갈때마다 뻥좀 보태서 물보다 많이 마시는게 오로나민 C였다. 다리아플 때도 마시고 목마를때도 마시고 배고플 때도 마시고-.- 어느새 오로나민 C는 단순한 음료수를 벗어나 거의 포션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난 그대로 자판기로 뛰어갔고, 오로나민 C와 함께 나의 체력과 컨디션은 100% 회복되었다.



元気ハツラツ!!



 
 앞서도 썼듯이 '교토-코베(神戶)-오사카 1일' 이라는 초하드코어한 일정 때문에 어딜 가더라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시간 배분을 잘해야 했기 때문에 어디어디에 들릴지를 미리 정해두기로 하고, 셋이서 의논한 결과 '긴카쿠지(銀閣寺)-킨카쿠지(金閣寺)-시간이 남으면 키요미즈데라(清水寺)' 의 루트가 결정되었다.

 사실 킨카쿠지와 키요미즈데라 두곳은 예전에 온 적이 있는 곳이지만 일본행이 처음인 관수 형도 있고, 나 역시 당시 시간에 쫒겨 후닥닥 보고 나간 것도 있고 해서 다시 한번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먼저 긴카쿠지로 향했다.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언덕길을 올라오자 긴카쿠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에 가봤던 킨카쿠지에 금박이 씌워져 있었으니 긴카쿠지는 그럼 은박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다 봤지만 눈에 띄는 건물이라고는 다른 절들이랑 그리 다를 바 없는 시커먼 관음전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 살짝 실망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관음전 반대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긴카쿠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버스 안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타고 있다.


아 사랑해 오로나민 C


내일까지 가뿐하게 본전을 뽑아줄 스룻토 칸사이 패스 2일권


긴카쿠지 가는 길


이런 곳에는 흔히 있음직한 기념품 가게들


긴카쿠지에 들어서서


고게츠다이(向月台) 라는 이름의 모래더미


저 까만 건물이 긴카쿠(관음전). 실제로는 지붕에 은박이 씌워져 있었다는 학설이 있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나바형과 한장


강시가 된 관수 형. 이마에 붙히고 있는 부적(?) 은 입장료를 낼 때 티켓처럼 준다.


지붕 끝에는 닭(?) 모양의 동상이 올려져 있다.


연못 한가운데에 있던 오오우치이시(大内石)


그 아래선 잉어들이 유유히


다리를 건너


센게츠센(洗月泉)이라 불리는 작은 폭포


동전들이 한가득


핫카쿠지마(白鶴島). 신선이라도 놀다 간 곳인지.


내려다 본 긴카쿠지.


관음전의 모습도.


얼마 안되는 거리 같은데 꽤 높이 올라왔다.


뒤에서


다시 내려오는 길에. 이나바형이 탐내던 족자.. (B'z)

 



 긴카쿠지를 나온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킨카쿠지로 향했다.

킨카쿠지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긴카쿠지에서 조금 떨어진 정거장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시간 표를 보니 버스가 그다지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약간의 기다림 뒤에 버스를 타고 킨카쿠지에 도착하자 시간은 정오를 지나가고 있었다.

 어찌보면 밋밋한(겉보기엔) 긴카쿠지보다는 화려한 킨카쿠지 쪽이 확실히 보기에는 좋았다. 다 제껴두고 저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킨카쿠가 뿜어대는 간지란.




버스에 내려 킨카쿠지로


입구에서


킨카쿠 원츄..


관광지는 일단 간지나고 볼 일이다.


아시하라지마(葦原島)


킨카쿠 지붕 위에는 무려 황금닭이 올라가 있다..(사실은 봉황이라고)


살벌하게 눈을 부릅뜨고 있던 왜가리(맞나?)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지 않고 장시간 포즈를 취해주는 관대함을 보이기도


후도도(不動堂) 불당 앞에서


짤랑짤랑..

 



 킨카쿠지를 나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결국 키요미즈데라는 포기해야했다. 일단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 점심을 먹은 다음 코베로 출발하기로 했는데, 교토에서 우메다로 향하는 열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우리는 50여분을 꼼짝없이 서서 와야만 했다. 오로나민 C의 약발은 이미 다 떨어진지 오래였고, 나는 아침의 생기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 어제 저녁 공항열차에서 일기예보에 좌절했다고 했었는데, 그건 완벽한 뉴스의 낚시였다.

 비는 무슨 얼어죽을, 아침에 오사카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날씨는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문제의 일기예보는 전세계 모든 도시의 날씨가 다 똑같았었다........



 오사카로 돌아온 우리는 신사이바시(心斎橋) 쪽의 류구테이(竜宮亭) 란 회전초밥집을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1인당 1575엔에 무제한으로(시간제한도 업ㅂ다) 초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일본을 몇번 오가면서도 가게 잘못 들어갔다가 지갑 다털리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초밥집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오늘 정말 날 잡은 셈이다^^

 전생에 생선하고 원수진 사람들처럼 환장하고 먹어댄 결과는 셋이 합쳐 70접시-.- 더 먹을 수도 있었는데 대충 그정도 선에서 정리하고 초밥집을 나왔다.



류구테이 앞에서


오, 온다..


초밥종류가 죽 나열되어 있는데, 사실 난 내가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A@;


자 시작해 볼까요


MISSION ACOMPLISHED

 



 이제 두번째 목적지인 코베로 향할 차례다.

우메다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열차에 올라탔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내가 눈만 감으면 잠이 들게 되다니 기적이야!

한참을 자다가 산노미야(三宮) 역에 다다를 즈음 일어나 아직 자고 있던 두사람을 깨워 전철에서 내렸다.

 코베에 도착하니 약 4시 무렵이었는데, 우리는 늦기 전에 먼저 키타노이진칸가이(北野異人館街) 로 가보기로 하고 지도를 찾아보았다. 산노미야에서 키타노이진칸가이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고, 평소의 나같으면 무작정 걸어갔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같은 행동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다른 교통수단을 알아보기로 했다.

 가이드를 뒤져보니 키타노이진칸가이로 가려면 '시티루프 버스' 라는 것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아쉽게도 스룻토 칸사이 패스가 적용되지 않았다. (요금은 250엔) 정류장에서 시티루프 버스를 타니 과연 관광버스답게 차량 안에는 기사 외에도 안내양 누나가 따로 타고 있었다.



코베 도착.


시티루프 버스

 



 키타노이진칸 정류장에서 내리자 계단으로 시작되는 긴 오르막이 보였다. 새벽부터의 강행군으로 우린 지칠대로 지쳐있었지만 이제부터는 근성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진칸이라는 이름처럼 언덕길 양 옆으로는 이국적인 모습의 저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약 20여채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 중 가장 근사하다는 우로코노이에(うろこの家) 를 일단 목표로 삼았다. 무료 개방된 이진칸 몇군데를 슬쩍 둘러보면서 언덕을 올라가니 이윽고 우로코노이에 입구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우로코노이에, 우로코미술관 두채의 건물이 나란히 서있었다. 이곳은 공개되어 있던 이진칸 중 가장 비싼 입장료를 자랑하는 곳(1000엔) 이었는데, 과연 전망도 좋고 볼거리도 나름 많아서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택 내ㆍ외부에 놓여진 독특한 전시물들 앞에서 컨셉사진을 찍으며(사진은 미공개..-.-) 낄낄대기도 하고 전망대에 올라 잠시 지친 몸을 추스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대략 5시 20분쯤 우로코노이에를 나왔다. 길을 빙 돌아서 다시 산노미야 역으로 내려오니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져가고 있었다.



코베 키타노 미술관(神戸北野美術館)


네덜란드 언덕(おらんだ坂)


이곳이 우로코노이에


내부는 이런 식


방에 들어가보면


작은 배 모형이


100엔을 넣으면 움직인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이곳저곳 돌아보다가


사쿠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바다가 보인다.


이번엔 정원쪽으로.


우로코노이에 가든하우스. 음료수 같은 걸 팔고 있었던 것 같다.


야마테 8번관(山手八番館).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뭔가 중세 필이


이제는 폐쇄가 된 곳인지 방치된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키타노텐만신사(北野天満神社)


개장시간이 지났는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카자미도리노야카타(風見鶏の館)


앞에 있는 작은 광장에서 묘기대행진.


내려오는 길에 들렀던 베스킨라빈스에서

 



 산노미야로 돌아온 우리는 전철을 타고 한정거장을 더 가서 모토마치(元町) 로 향했다.

 이제 야경을 감상하며 코베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뭐 마무리 지을 거리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토마치의 상점가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죽 가로질러서, 중화가 난킨마치(南京町) 로 접어들었다.

 수많은 노점들 사이에서 요란한 조명과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난킨마치의 분위기는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아쉽게도 점점 흘러가는 시간이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 계획도 있었는데 점심때 류구테이에서 오버를 한 나머지 아무도 밥생각이 없었고-.- 결국 그냥 스쳐가듯이 난킨마치를 빠져나와 메리켄 파크 쪽으로 향했다.



모토마치


난킨마치에서. 이름도 그렇고 뭔가 비밀결사같은 분위기의 간판이다.


난킨마치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찬히 둘러보질 못해서 아쉬운


장안문을 지나서


유명한 가게인지 길게 줄을 서있다.


서안문. 95년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상징하는 의미로서 2005년 완성되었다고.

 



 메리켄 파크에 다다를 즈음 먼저 코베 포트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는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고 밤의 전경을 즐기기엔 이곳이 최적의 장소라 생각한 우리는 공원 안의 다른 곳은 보는둥마는둥 곧바로 포트타워로 향해 입장권을 끊었다. 안내양 누나를 따라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가자 코베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전망을 감상하다 8시 조금 안되어 오사카로 돌아가기로 하고 포트타워에서 내려왔다. 바로 앞 건너편에 모자이크며 하버랜드가 보였지만 우린 거기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근성 근성 해댔지만 우린 럭키짱 만화책의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고, 보도블럭 위에 조금이라도 튀어나온게 있으면 그대로 걸터앉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면서 모토마치역으로 돌아와 오사카로 가는 열차를 탔다.



코베 포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코베의 야경




 오사카로 돌아온 우리는 아침에 짐을 넣어뒀던 난바역의 코인라커에서 다시 짐들을 모두 꺼내들고 민박이 있는 킨테츠 니폰바시(近鉄日本橋駅) 역으로 향했다.

 우연찮게도 작년 여행때도 묵었던 곳이라 니폰바시역에서 내려 출구를 나오자 민박까지 가는 길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어가던 중 주위를 둘러보던 이나바 형이 여기라면 난바에서 걸어오는 게 더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난 왜 작년에 난바에서 여기 오는데 한시간이 걸렸을까...-.-

 민박에 도착해 안내받은 방으로 올라가니 다행히 셋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진정한 '휴식' 을 취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새삼스럽게 집의 소중함을 느끼며-.- 한동안 바닥에 널브러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위대하신 에어컨님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는 중입니다.

 



 잠시 얼이 빠진 채 앉아 있던 우리들은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교토-코베-오사카 1일' 이라고 했듯이 1분 1초가 아까운 일정에 오사카에서 잠만 잘 생각은 결코 없었다. 아 뭐 그렇다고 이 오밤중에 오사카성 같은 곳을 가겠다는 건 아니고ㅡ

 10시가 넘은 시간에 민박 주위의 거리는 쥐죽은 듯 고요했지만 번화가인 도톤보리(道頓堀) 쪽으로 나오자 그곳은 코베의 난킨마치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수많은 인파로 넘실거렸다.

 어? 그러고보니 우리가 코베를 언제 갔었지? 지난주에 갔었나요?

 불과 두시간 전에 코베에 있었는데 이제는 까마득한 옛 추억처럼 떠오르는 것이 시간여행이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하룻밤만 새면 드로리안은 아무나 탄다.

 


 도톤보리 에비스바시(戎橋)의 상징 글리코맨 간판 앞은 기념사진 찍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그중엔 한국 관광객들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도 사진 한장씩 박고 잠깐 100엔샾에 들렀다가 오늘의 최종목표ㅡ카라오케ㅡ를 찾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휘황찬란한 오사카의 밤거리


글리코맨~


질 수 없음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가던 길에 봐뒀던 '쟌카라(ジャンカラ)' 라는 카라오케로 들어섰다. 규모가 큰 곳인지 카라오케가 건물 한채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카운터로 향하자, 이곳은 한국의 노래방처럼 그냥 요금만 내면 되는 시스템이 아닌지 뭐 이것저것 작성할 것들을 내준다.
이나바 형이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조금 기다려야 했고, 잠시 후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본의 카라오케는 외관상으로는 딱히 한국 노래방과 다른 점은 없었다. 리모콘으로 좀더 디테일한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마이크가 무선이라는 것 정도.. 사실 그런 걸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으니까.



카라오케 안은 대략 이렇다.

 



 요즘은 '태△' 이나 '금○' 같은 국내 노래방 기기에서도 어지간한 일본노래들은 찾아볼 수 있지만 역시 일본의 원조 카라오케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여기서는 말그대로 J-POP이 그냥 가요일테니.. 다양한 노래에 목말라 하던 이나바 형과 관수 형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이크를 잡고 샤우팅을 하기 시작했다. 이나바 형은 B'z, 관수 형은 뭐 이것저것..

 난 누가 오덕 아니랄까봐 주로 애니/게임 곡들을 불렀는데, 만화왕국 일본답게 관련곡들의 양도 엄청났고, 국내엔 오프닝송 달랑 두곡 있는(사실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지만) 사쿠라대전 노래들도 꽤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모처럼이니 사쿠라대전과 세라문으로 달려주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부르려고 하니 죄다 여자보컬이라 내가 부를 만한 게 없었다-.-



세일러문과 사쿠라대전 노래들



シャアが来る(샤아가 온다), Zㆍ刻をこえて(Zㆍ시간을 넘어) / 兄  Feat. 곤잘레스

 



 약 두시간 정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방안에 설치된 인터폰이 울렸다. 오 만화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

 인터폰을 받아보니 대략 '몇분 남았는데 추가시간을 넣을 건지 말 건지' 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사실 시끄러워서 뭔소린지도 잘 못 알아듣겠고 그냥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카라오케를 나온 시간은 새벽 1시.. 내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곳에 한 번 더 올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민박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야말로 하얗게 불태워 이제는 재만 남아있었다.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를 이 길었던 하루가 드디어 끝나가고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아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먹을걸 사왔다.


새우깡이잖아..


45시간 동안 신고 있었던 양말을 벗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