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와서 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오늘 역시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10시에는 아키하바라(秋葉原)에 도착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뒤늦게 일어나 민박에서 빈둥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야 나 역시 슬슬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키하바라를 포기할 정도면 도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갈 데가 뻔하지 뭐.
어제 그렇게 눌러앉아 있었으면서도 나는 또 태정낭만당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태정낭만당과 사쿠라 카페는 어제처럼 만원이었다. 일단 이름부터 적고 태정낭만당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중국인(대만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었음) 방명록을 뒤적이니 홍콩을 비롯해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글도 보였다. 이제 세계의 사쿠라대전?
전에는 분명 40만엔이라는 가격표가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신파랑새 의상.
나도 방명록이나 적어둘까 해서 글을 쓰는데 귀축형 생각이 났다. 14일 공연은 귀축형과 함께 관람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형의 일본행이 무산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내가 가요쇼를 볼 수 있는 것도 다 귀축형 덕분인데.. 조금 침울해져서 방명록에 한마디 덧붙혔다.
'PS.귀축형이랑 같이 오고 싶었는데ㅜㅜ 형 몫까지 보고 올게!!'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카페로 입장하는데는 역시나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기자들을 위해 놓여진 의자는 이미 꽉 차있었고, 이 안에서 다른데 갈 데도 없었기 때문에 태정낭만당에서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ソン樣~ ソン樣~'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카페 쪽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아무래도 내 뒤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잔뜩 있으니 오래는 못 있겠다 싶어서 한꺼번에 주문을 했다.
그래서
서니사이드의 쇼타임 햄버그(945엔)
리카리타의 일단 먹고봐! 핫도그(441엔)
아이리스 논알콜 칵테일(819엔)
(사진 출처 태정낭만당 홈페이지)
논알콜 칵테일을 마시면 이런걸 준다
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이 되어 태정낭만당을 나오니 한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가요쇼 입장은 4시30분 부터이기때문에 어떻게 아키하바라에 갔다올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무리일 것 같아서 가까운 신주쿠에나 들렀다 가기로 했다.
뭐 결국은 신주쿠에서 종일 헤메는 바람에 아키하바라에 가는게 차라리 나을 뻔 했지만. (그래도 건질 건 건졌다-_-)
악수회에 늦지 않도록 시부야에 도착해 아오야마 극장으로 향하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웬 할머니가 내가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으악'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나인데.. 나는 기겁하며 도망가려 했으나 할머니께서 찾고 계신 장소는 다름아닌 '아오야마 극장' 이었다. 할머니도 혹시...
아오야마 극장
매점에서 귀축형 줄 브로마이드나 몇장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극장 앞에 들어서자 맞은 편에 낮익은 얼굴이 보였다.
누구야 저사람?
귀축형이잖아!!!!
아니 이런 반전이 일어나다니.. 출국 직전까지 못간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귀축형이 와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이 이자리에 서있기까지 무수한 고초가 있었는데.. 엄마찾아 삼만리 뺨치는 귀축형의 사정은 여기서는 패스. 아무튼 귀축형과의 감동의 만남 이후 같이 줄을 서서 악수회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시작된 악수회는 어제와 멤버가 조금 달라서 나카지마 토시히코씨가 불참하셨다.
코스프레~~
악수회
소노오카 신타로씨
스야마 아키오씨
악수회가 끝난 뒤 극장 안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어제 살만한 것들은 다 사뒀기 때문에 매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키하바라를 안가서 돈도 남았겠다, 내일은 귀국이니 여기서 다 써버리자 하는 생각에 매점으로 달려갔다.
매점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고, 슬쩍 판매대 쪽을 보니 브로마이드는 바라구미를 제외하고는 전부 '매진' 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내가 사려는 건 다른 것이긴 했지만.. 뒤늦게 줄을 섰기 때문에 내 차례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오늘 구입한 휴대폰 클리너. 번호 순대로 아이유에니, 츠바사, 베니토카게, 아라비아의 장미
해신별장, 팔견전, 신보물섬, 신서유기, 신 아이유에니
어제 신파랑새만 샀었는데, 결국 나머지를 다 사고 말았다.
매점에서 돌아오니 공연개시가 임박해 있었고, 더 기다릴 것도 없이 귀축형과 몇마디 하는 사이 히로이 오지가 등장했다.드디어 내게 있어서 마지막 가요쇼의 시작이다.
오늘도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몇줄
...우리의 자리는 F열 3, 4번. 앞에 다섯줄 밖에 없는, 거짓말 안보태고 '표정까지 보이는' 자리였다. 지난 가요쇼 때의 자리들도 그리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이 차이는 상당히 커서, 같은 공연이었음에도 무대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또 달랐다.
...악수회 때 나카지마 토시히코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었는데, 마에세츠 때도 히로이 오지와 타케다씨 만이 등장했다. '오늘은 오야카타가 없으니까' 나카지마씨가 안나오신다는 말은 없었는데? 나카지마씨가 빠짐으로서 일부 상황과 대사 등에도 미묘하게 변화가 있었다.
...어제도 봤었는데 극장 안에는 무려 '다나카 코헤이 선생' 의 코스프레를 하고 온 사람이 있었다. 복장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흡사해서 처음 봤을 때 '왜 코헤이 선생이 줄을 서있지?'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 이 분은 어제도 오늘도 객석 제일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전 공연을 다 예약해 둔건 아닐까 싶었다.
...어제 너무나도 얌전했던(?) 옆자리 관객들 눈치보느라 소리는 지르지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던 나였지만, 오늘은 귀축형도 있겠다, 더군다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 후회없이 마음껏 내질렀다. '待ってました!' 'たっぷり!' '日本一!' 그리고 '아이리스!!!!'
...다나카 마유미씨의 휴지투척(?)은 오늘도 계속되었는데 그 뒤에 이어진 코헤이 선생의 리액션이 대박이었다. 단지 휴지를 쳐내는 걸로 끝난게 아니라 맞받아서 티슈상자를 무대 위로 집어던진 것^^;
...하나사쿠 오토메의 간주가 흘러나올 때 니시하라씨 외 몇 분이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조금 뒷자리였기 때문에 '좋겠다..' 하면서 바라봤을 뿐이었지만 오늘은 자리도 나쁘지 않으니 혹시 여기까지 오시진 않을까 기대해 봤는데.... 역시 앞 두어줄만의 특권이었다.(ㅜㅜ)
...마지막으로 무대인사. 12일 공연을 관람했던 귀축형에 의하면 다나카 마유미씨는 첫날부터 눈물을 보이셨다는데. 아니 이분들이 천추락 때는 어쩌시려고... 요코야마씨의 마지막 한마디는 절대 잊을수 없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신구지 사쿠라가 되고 싶습니다'
막이 내려 가는 순간에도 객석에서는 박수소리와 '아리가토!!' 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고마워요!! 10년간 정말로 수고하셨어요ㅜㅜ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빠져나오자 극장 현관 앞에는 곳곳에서 보내온 화환들로 꽃냄새가 코를 찔렀다. 팬들이 보내온 것부터, 탤런트 키쿠치 미카, 파리 하나구미의 히다카 노리코씨, 코자쿠라 에츠코씨가 보낸 화환도 보였다. 시티헌터의 작가 호죠 츠카사씨의 이름도 보였는데 이쿠라 카즈에씨와 다나카 마유미씨 앞으로 보내져 있었다.(이쿠라 카즈에씨는 시티헌터에서 카오리 역을 맡으셨음.)
이제 정말로 다시 올 일이 없게 된 아오야마 극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이제 공연 사흘째일 뿐이지만 이쪽은 또 이쪽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가요쇼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아직 성불하지 못한 아오야마의 유령
축 이쿠라 카즈에님에게 무대의 신의 미소에 감사하는 부대로부터
진짜진짜 마지막이 될 아오야마 극장. さらば~ T.T
둘 다 저녁은 안먹었기 때문에 시부야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라면가게에 들렀다. 배도 고프고 해서 '몽땅 들어간(全部入り)' 라면을 먹으려고 식권자판기를 보니 오오모리(大盛-곱배기)도 가격이 같은 것이었다.(1000엔) 우리는 얼씨구나 하며 오오모리로 주문했고, 잠시 후 나온 엄청난 양의 라면에 '와 죽이는데~' 라며 신나게 먹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ㅅㅂ 이걸 어떻게 다먹어ㅜㅜ' 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면을 먹고 나서 같이 전철을 타고 내일의 일정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귀축형은 공항 가기 전에 사쿠라 카페나 들렀다 가야겠다고 했고, 나 역시 솔깃했으나 이미 15일 지브리 미술관 입장권을 구입해 놓은 뒤였기 때문에 아쉽지만 계획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귀축형과는 우연찮게도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태정낭만당 위치를 알려준 뒤 형과 헤어져 민박으로 돌아왔다.
민박으로 돌아와서는 귀국을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태정낭만당과 아오야마 극장에서 말고는 별로 산 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뭔가 이것저것 많아서 캐리어 안에 전부 몰아넣느라 진땀을 흘렸다.
힘들게 정리를 끝내고 맥주한잔 들이키며 지난 일주일을 돌이켜 보았다. 뭐 여러가지 있었지만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겠지..
이래저래 잊지 못할 밤이 될 것 같다.
문제의 라면. 뻥 안치고 고명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サクラ大戦 > Ev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7 사쿠라대전 부도칸 라이브 ~제도ㆍ파리ㆍ뉴욕~ 관람기 Day1 (2007.5.13) (14) | 2007.06.03 |
---|---|
LIVE ON (8) | 2007.05.16 |
2006 슈퍼 가요쇼 '신 사랑 때문에' 관람기 1 (2006.8.13) (5) | 2006.08.28 |
가요쇼의 시즌 2 (4) | 2006.07.29 |
2006 신춘 가요쇼 '달리는 하나구미' 관람기 (2006.1.7) (0) | 200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