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6~2010

2006 FINAL 여행기 Day2 -에노시마, 카마쿠라- (8/10/2006)

GONZALEZ 2006. 8. 20. 12:44

 6시 30분에 일어났다. 자명종을 7시에 맞춰두긴 했는데, 이왕 일어난 거 일찌감치 출발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바로 준비를 마치고 7시 쯤 민박을 나섰다. 도중에 역 근처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전철을 타고 신주쿠(新宿)로 향했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신주쿠의 오다큐선 매표소에서 에노시마 프리패스를 구입해 에노시마로 가는 전철을 탔다. 목적지인 카타세에노시마(片瀬江ノ島)행 급행을 타는게 제일 좋겠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일단 오다와라(小田原)행 급행을 타고 사가미오노(相模大野)까지 가서 다시 카타세에노시마행 열차로 갈아탔다.

 종점인 카타세에노시마역에 내리자 역 주위엔 피서객들로 가득했으며, 근처에 해수욕장이라도 있는지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수욕이라니 나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본 뒤 에노시마로 향했다.



카타세에노시마역


역 앞의 다리를 건너 에노시마로


에노시마 가는 길


에노시마가 보인다.




 섬까지 이어지는 긴 다리를 건너 에노시마에 들어서자 비좁은 언덕길이 이어졌고, 길을 따라 올라가니 에노시마 신사의 모습이 보였다. 신사에 들어서서도 꽤나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는데, 그 때문인지 아예 유료로 에스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한번 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올라가면서 살짝살짝 내려다 보이는 해변의 모습도 멋졌기 때문에 그냥 걷기로 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신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식물원이 있었고, 에노시마 밖에서도 보였던 높다란 전망대는 이곳에 세워져 있었다. 식물원을 빙 둘러보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물론 입장료는 내야 하지만.)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에노시마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햇빛은 쨍쨍했지만, 바람이 불어서 오히려 시원했다. 전망대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곳도 여기서는 한번에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전망대와 옥상을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이정도면 많이 쉬었다 싶어서 10시 30분 쯤 전망대를 내려왔다.



에노시마에 들어서자


도리이를 지나 에노시마 신사로


신사 안의 모습


길을 오르다 보면 이런 풍경도 볼 수 있다.


온통 빨간색이다.


식물원에서


해시계?


사무엘 코킹 정원이란 곳인데, 꽃이 피어있진 않았다.


후지사와(藤沢)시와 마츠모토(松本)시의 교류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식물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전망대


전망대 안에서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까지 보인다고 했는데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를 내려와 식물원을 좀더 돌아보았다. 식물원 맞은편에는 Garden Palor라는 푸드코트가 있었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패스하고 곧바로 치고가후치(稚児が淵)로 향했다. 식물원에서 치고가후치까지는 외길이라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도중에 에노시마 타이시(江ノ島大師), 오쿠츠노미야(奥津宮) 신사 등을 거쳐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니 비좁았던 공간이 열리며 바다가 모습을 나타냈다.

 치고가후치의 절벽으로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빙 둘러진 다리를 걸어가니 그 끝에는 에노시마이와야(江ノ島岩屋)라는 동굴이 있었다. 뭐 볼거 있겠나 싶어서 도로 돌아갈까 하다가 여기까지 꽤 많이 걸어왔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물론 입장료를 내고)

 동굴 안에 들어서자 분기(?)가 나왔는데, 먼저 제 1동굴 쪽으로 향하자 입구로 보이는 곳에 아저씨 두명이 앉아 있다가 나에게 등불 같은 것을 건네는 것이다.

 아니 이사람들이 이런데서도 장사를 하나.. 싶어서 '大丈夫です(괜찮아요)' 라고 말한 뒤 동굴로 들어갔는데, 나보다 앞서 들어왔던 사람들이 전부 등불을 들고 있었다. 헉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파는게 아니라 들어갈때 받았다가 나가면서 도로 반납하는 거였다.. 이제와서 다시 달라고 할수도 없고 나는 깜깜한 동굴 속을 희미한 빛에 의지해 돌아봐야만 했다.



치고가후치 가면서 본 전망대


에노시마 타이시는 밖에서만 보았다.


오쿠츠노미야에서


계단길을 사이에 두고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치고가후치


이 다리를 쭉 걸어가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동굴 안은 이런 분위기




 더듬더듬 1동굴을 빠져나온 뒤 2동굴로 향했다. 두 동굴 사이에는 각각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가이드 등에도 소개되었던 거북 바위를 찾아보고 다시 2동굴로 들어갔다. 이번엔 꼭 등불을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조명이 잘 갖춰져 있어서인지 등불을 주지 않았다-_-

 2동굴까지 모두 돌아본 뒤 밖으로 나오자 1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카마쿠라(鎌倉)로 가볼까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에노시마를 빠져나가는데,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이드를 뒤져보니 '용연의 종(龍恋の鐘)' 이라는 곳을 지나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날도 덥고 귀찮았지만, 일단 볼 수 있는 건 다 보고 가자는 마음에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용연의 종으로 향하는 길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인적은 드물고 수풀은 무성한데 까마귀까지 울어대서 내 앞에서 걷고 있던 여자일행들은 '何か怖い~(왠지 무서워~)' 를 연발하고 있었다. (괜히 뜨끔한 1인;)

 카마쿠라로 가려던 내 발목을 붙잡은 곳이지만, 용연의 종은 그다지 볼만하진 않았다. 그냥 덩그러니 종이 하나 놓여있었고, 근처의 난간에는 왜인지 자물쇠 수백개가 달려있었다. 거기다가 무개념 청소년들에 의한 '신지♡유키' 라는 스프레이 낙서까지 휘갈겨져 있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종 주변을 대충 돌아보고 카타세에노시마역으로 되돌아왔다.



1동굴과 2동굴을 잇는 다리에서


이게 바로 거북바위


2동굴 안에는 용 모형이 있었는데, 일정간격으로 우르릉꽝꽝 소리를 내며 번쩍거렸다.


내 소원은 세계정복


동굴은 이렇게 생겼다.


용연의 종에서.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신지유키 커플


자물쇠들이 한 가득


에노시마를 떠나며



 오늘 내가 구입한 에노시마 프리패스로는 '에노덴(江ノ電)' 이라는 후지사와~카마쿠라를 오가는 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타고 카마쿠라로 이동하기로 했다. 카타세에노시마역을 지나가거나 하진 않아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에노시마역으로 갔다.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 에노시마 수족관을 지나가게 됐었는데, 이근처에 해수욕장이 있는지 죄다 수영복(비키니-_-v) 일색이었다. 잠시 헤벌레하며 서있다 여기에나 좀 있다 갈까 했지만, 결국 에노시마역을 찾아가 에노덴을 탔다. 에노덴은 4량 정도 밖에 안되는 조그만 열차였다.

 에노덴 하세(長谷)역에서 내려 먼저 하세데라(長谷寺)를 찾아갔다. 눈에 띄는 표지판 등은 없었지만, 좁은 길에 사람들이 가는대로 따라가다 보니 절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절 내를 돌아다니다 식당이 있길래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못 본 곳들을 마저 구경했다.

 하세데라를 나온 뒤에는 조금 더 걸어가 카마쿠라 다이부츠(大仏)로 향했다. 고토쿠인(高徳院) 안에 들어서자 11미터가 넘는다는 거대한 불상이 놓여있었다. 20엔을 내고 불상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천장 쪽에 뚫려있는 구멍 하나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다이부츠에서 나와 하세역으로 돌아온 뒤 에노덴을 타고 종점인 카마쿠라에서 내렸다.



에노덴


에노덴 안의 모습


하세데라에서


만지연못(卍池)


나무아미타불


하세데라에서 먹은 우동


사진에는 몇마리 안 보이지만 잉어가 엄청 많았다.


벤텐구츠(弁天窟)


벤텐구츠 안에서. 두번째 사진의 조그만 상들은 참배객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 한다.


물이 흘러내리는 곳


카마쿠라 다이부츠 도착.


밑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상 안에는 저 구멍 하나만 덜렁 있다.



 이곳에서는 와카미야오지-츠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켄쵸지(建長寺) 순으로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가장 가까워 보이는 와카미야오지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시계탑을 지나 굴다리를 통과하니 엄청난 인파가 지나가고 있었다.

 와카미야오지라는 이름 때문에 이곳도 무슨 절이겠거니 싶어서 열심히 걷고 있는데, 아무리 가도 그런 이름의 절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하면서도 계속 걸어가니 과연 오래되보이는 건물이 하나 나타났는데, 이름이 츠루가오카하치만구. 엉? 와카미야오지는 어디 간거야?

 일단 오긴 했으니 츠루가오카하치만구에 들어가 내부를 돌아보았다. 뭔가 공사중이었는지 천을 덮어씌운 곳들이 많았다. 여기가 카마쿠라의 얼굴이라던데..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나마 나머지 개방되어 있는 곳들을 둘러본 뒤 건물을 나와 다시 와카미야오지를 찾아보기로 했는데.

 카마쿠라역에서 4분거리라는 곳이 어디 다른데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왔던 길을 죽 되돌아 가다가 문득 가이드를 뒤져 본 나는 멍해지고 말았는데, 와카미야오지는 절 이름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이름이었던 것이다. 와카미야오지(若宮大路). 寺가 아니라 路였다...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뒤돌아서 마지막으로 켄쵸지로 향했다. 켄쵸지는 츠루가오카하치만구에서 조금 더 걸어가야 했다. 한참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나와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죄다 내려오는 사람들 뿐이었다.

 뭔가 불안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는 하자 싶어서 끝까지 걸어갔는데 역시나 켄쵸지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 4시 20분) 개방시간을 사전에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결국 켄쵸지 앞에서 사진만 한장 찍고 카마쿠라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켄쵸지를 찾고 있던 사람들과 지나쳤는데,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냥 잠자코 있었다.



카마쿠라역 주변의 모습


츠루가오카하치만구 본궁 올라가는 길. 계단이 좀 많다.


기념품 가게


술을 봉헌(奉獻)한다는 건가


타이코바시(太鼓橋)라는 곳인데 지나갈 수 없게 막아놓았다.


여기가 와카미야오지 입구


켄쵸지 앞에서. 겨우 찾아갔는데 문을 닫다니.



 이제 카마쿠라에서의 일정도 끝나면서 저녁에 하나비를 보는 것만이 남았다. 사실 여행계획을 짤 때는 카마쿠라에서 일찍 도쿄로 돌아와서 슨요프를 보러 야구장에 가려고 했었는데 8월 10일에 카마쿠라 하나비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야구는 포기하기로 했다.

 카마쿠라에서 에노덴을 탔는데 열차 안에는 하나비를 보러가려는 듯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낮에도 들렀던 하세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고, 나도 그 뒤를 따라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맥주와 소세지를 사들고 해변을 따라 걷다보니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였고, 그곳에 걸터앉아 하나비를 기다렸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어서 맥주를(혼자서ㅜㅜ) 마시며 앉아있는 사이 하늘은 어두워져 갔고, 7시가 되자 드디어 하나비가 시작되어 폭죽이 하나둘 쏘아올려졌다. 약 1시간 정도 계속된 하나비가 끝나고 민박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다.



맥주, 소세지, 그리고 나홀로. 사람들은 그것을 안습이라 한다.


하나비를 기다리며


테스트를 위해 발사된 폭죽


날이 저물었다.


방송국에서 온 듯


드디어 시작된 하나비. 근데 왜 사진이 이따구냐ㅜㅜ



 하나비는 좋았지만 이제 돌아가는게 문제였다. 조그만 규모의 하세역은 이 수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었기에 경찰들이 분주하게 차량과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고, 하세역 안으로 들어가는데만 수십여분이 걸렸다. 에노덴 역시 마찬가지라서 몇대의 열차를 그냥 보내고 나서야 간신히 사람들 사이에 끼어탈 수가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차 안에서 나는 에노덴이 후지사와(오다큐선 카타세에노시마에서 몇정거장 앞)까지 간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낮에 왔던대로 에노시마에서 내려 카타세에노시마로 걸어갔는데, 이게 오히려 잘 된 셈이어서 카타세에노시마역은 낮과는 달리 한적했고, 텅 빈 열차안에서 편하게 신주쿠까지 올 수 있었다.

 민박으로 돌아오자 이미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다인실을 예약했기에 원래는 두명이 한 방을 써야 했지만, 오늘은 다 말고는 예약자가 없는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일도 일찍부터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서둘러 방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에노시마와 카마쿠라의 정경, 하나비의 흥취, 그리고 난데없는 지옥철까지.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