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06~2010

2006 일본 여행기 Day7 -오사카- (1/9/2006)

GONZALEZ 2006. 3. 3. 00:55

 버스는 6시 30분에 오사카 우메다 역에 도착했다. 어차피 잠이 오지도 않았기에 그냥 뜬눈으로 밤을 보냈더니 차라리 덜 피곤했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지..? 저녁에 페리터미널로 갈때까지 시간을 보내야했는데, 새벽부터 뭘 해야할지 막막했다. 일단은 짐부터 처리하기로 하고 난바로 향했다.

 난바 역의 코인락커에 짐가방을 넣어두고 역을 나와 24시간 오픈하는 츠타야를 찾아갔다. 아침엔 어떻게든 여기서 죽치고 있다가 10시가 넘으면 덴덴타운이라도 가 볼 생각이었다. 뭐 솔직한 심정으로는 어디든 아무데나 쳐박혀 잠이나 자고 싶었다.

 24시간 오픈하는 곳 답게 츠타야에는 별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 역시 그들 틈에 섞여 성인용 잡지나 들춰보고 이름도 모르는 가수들의 음악을 듣고 5분 가량의 영상이 반복 재생되는 DVD샘플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츠타야에서 거지꼴로 두어시간 서있다가 슬슬 다른 매장들도 오픈할 시간이 되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볼거 없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좀 더 환경이 좋은 쪽이 낫지 않겠나 싶었다. 츠타야를 나와 근처에 있는 빅카메라로 들어간 나는 너무나 힘든 나머지 곧바로 화장실로 향해 십여분을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어느정도 기운을 회복한 뒤 덴덴타운으로 향했다. 덴덴타운은 아키하바라처럼 전자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뭐 아키하바라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의외의 아이템들도 곧잘 보이곤 해서 도쿄에서 놓친것들이나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돈도 별로 안 남아있었기 때문에 찾는다고 해도 침만 흘릴것 같았지만.

 예전같으면 이런 곳에 와서는 그저 신나서 돌아다녀야 할텐데 이날은 내가 좋아서 온게 아니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온 것이기에 전혀 흥이 나질 않았다. 카메라는 들고 있었지만 사진은 한장도 찍지 못할 정도로 내 상태는 엉망이었다. 몸이 힘든거라면 견딜 수 있었지만 마음마저 지쳐버리니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오후내내 덴덴타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는데, 어떻게 된게 어덜트 샾에 들어갔을 때가 시간은 제일 잘갔다.-_-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마냥 지루했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서 오후 5시가 되자 요시노야에 들러 부타동 한그릇을 먹고 난바역으로 돌아왔다. 코인락커에서 짐을 찾아 지하철 요츠바시(四つ橋)선을 타고 스미노에코엔(住之江公園)에서 모노레일 난코 포트타운선으로 갈아탄 뒤 페리터미널 역에서 내렸다. 페리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승선 수속을 하러 갔다.


직원: 이름이..?

나: 타에킨(자포자기)


 이틀전 여행사와의 통화에서는 예약증이 없어도 예약은 확실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권만 보여주면 될거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배삯은 지금 낼거냐 여행사 이름을 알려달라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시 한번 뒤통수를 때렸다.



페리터미널에서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에 설치된 TV로 스모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다행히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일행들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행 배를 타고 먼저 가버렸다. 곧 내가 탈 신모지 행 페리의 출항 시간이 다가와 페리에 올랐다. 자리가 비좁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예전의 '쇼생크' 보다는 나았다.

 객실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난데없이 코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쌓일대로 쌓인게 드디어 폭발한 모양이다. 놀라기 보다는 나홀로 외지에서 별별 일을 다 겪는다는 생각에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덴덴타운의 예쁜 누나에게 받은 휴지로 코를 틀어막았지만 피는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



명문 페리. 주차공간까지 있는 대형 선박이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



Emergency..

 



 한바탕 피를 쏟아내고 나자 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시트에 묻은 피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채 시체처럼 드러누웠다. 이대로 시야가 어두워지고 머리 위에 GAME OVER 문구가 떠도 이상할게 없을 것 같았다. 간신히 휴대폰을 열고 예전에 다운받아 뒀던 초난강의 '정말 사랑해요' 를 들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z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