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일째의 사진들은 대부분 바이러스로 날아갔습니다-_-
일본에 온지 6일째, 내일이면 귀국이다. 내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날은 아침일찍 공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오늘이 일본 여행 마지막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만큼 마무리를 잘 지어겠다는 생각과 함께 민박집을 나섰다.
오늘의 일정은 요코하마(横浜) 한 곳이었다. 그동안 무절제한 소비를 해가면서도 나름대로 이날을 대비해두고 있었다. 전날 오다이바에서 그렇게 돈에 벌벌 떨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요코하마에서 마음껏 하루를 즐기는 것 뿐이었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마음껏 하루를 즐기기는커녕, 뜀박질만 열심히 하다 왔다. 오다이바에서보다 더 궁핍하게..
처음 여행 계획 세울때도 6일째는 요코하마 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만큼 요코하마가 유명한 곳이긴 하지만 과연 이곳에서 내내 하루를 보낼수 있을까? 다른 곳 두어군데 정도 들렀다 와도 늦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꿨다.
급하게 수정된 계획은 먼저 긴자(銀座)를 구경하고 이케부쿠로로 돌아가서 태정낭만당에 들러 사쿠라카페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 요코하마로 가는 것이었다.
오가는 시간으로 보나 교통비로 보나 상당히 비경제적이고 무책임한 계획이었지만 그때는 뭐가 씌였었는지 스스로도 '음 좋아..' 라며 만족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긴자로 향했다. JR로 긴자를 가려면 유라쿠쵸(有楽町) 역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기왕 가는거 좀 더 돌아다녀볼까 하는 생각에 도쿄 역에서 내렸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한참을 걸어간 끝에 긴자 거리가 나타났다.
긴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사쿠라대전. 태정 낭만의 시대, 평화로운 때에는 무대에 생사를 걸고, 제도에 위기가 다가오면 정의의 전사로서 악과 싸우는 제국가극단/제국화격단 하나구미(花組)의 본거지가 이 긴자 거리에 있다는 설정이다.
..라고 해봤자 어디까지나 게임의 이야기. 실제의 긴자 거리는 내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긴자의 볼거리라면 소니 쇼룸이라던가 와코(和光), 미츠코시(三越), 산아이(三愛) 등의 호화 백화점 등이 있다는데, 그런쪽에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슥 한번 쳐다보고 그냥 지나쳐 갈 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장난감 백화점이라는 햐쿠힌칸(博品館) TOY PARK 가 그나마 내 발길을 붙드는 곳이었다.
긴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기서의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이케부쿠로로 가는 전철을 탔다. 태정낭만당은 며칠전에 이미 들렀던 바 있지만, 도저히 그때의 가슴떨리는 기억을 잊을수가 없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기념으로 밥이나 먹고 가자.
먼저 사쿠라 카페로 들어갔다. 여러가지 메뉴가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먹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을 낑낑대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칸나 카레를 주문했다.
역시 몰래 찍은 칸나 카레.
이윽고 카레가 나왔다. 메뉴의 설명으로는 '오키나와(沖繩) 명물! 건강제일!' 이라는데 그런건 잘 모르겠고 아직도 기억나는 건 3분 카레 맛이었다는 것과 상당히 비쌌다는 것이다. (800엔)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즐기는 건 음식이 아니라 분위기가 아닐까.
계산을 마치고 바로 나오려 했다. 그러나 눈 앞에 보이는 건 한가득 진열되어 있는 태정낭만당의 상품들. '요코하마 안갈거냐'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지만 발은 떨어지질 않는다.
결국 나는 사쿠라대전 티셔츠를 들고 카운터 앞에 서있었다. 순식간에 3500엔이 없어졌다.
아니 차라리 여기까지였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태정낭만당을 나온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요코하마가 아니라 하라주쿠였던 것이다.
요코하마 갈 돈으로 산 티셔츠-_-
태정낭만당 포인트카드.
하라주쿠에 도착해서 북오프를 찾았다. 사쿠라대전 음반을 사기 위해서였다. 또 적지 않은 지출이 있었다. 충동구매는 병이라는데, 이 정도면 정말 중증이 아닌가 싶다.
북오프를 나오니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상당히 허비한 뒤였다. 요코하마에서 하루종일 즐기겠다는 계획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요코하마에 갈수 있긴 있는건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다 때려치우고 내일 일찍 나가야 하니 민박집 가서 잠이나 잘까 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그것은 그동안 잘 해왔던(정말?) 여행에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요코하마 땅이라도 밟고 오기로 마음 먹고 전철에 올라탔다.
시나가와(品川)에서 요코하마행 열차로 갈아탔다. 이젠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내게 남은 돈 920엔.
불쌍한 사람을 구제합시다..
일단 숨 한번 돌리고 요코하마 관광-_-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역 주변에 이렇다할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들이 하나도 없었다. 바다도 안보이고, 인터넷에서 보았던 차이나 타운은 비스무리한 것도 없고, 그냥 좀 시끄러운 동네 중 하나인것 같았다.
이게 진짜 요코하마란 말야?
이건 아니다 싶어서 늘 하던대로 일단 걸었다. 가다보면 나오겠지. (※역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요코하마의 볼거리들은 요코하마 역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보통은 몇정거장 뒤에 있는 사쿠라기쵸(桜木町) 역이나 이시카와쵸(石川町) 역에서 내린다는 것이다. 요코하마 관광안내 지도를 보면 내가 내렸던 요코하마 역은 너무 멀어서 나와 있지도 않다-_-)
10시까지는 요코하마 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거의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미나토미라이21, 코스모 월드 등이 내 시야에서 휙휙 지나갔다. 짧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봐야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어쩔수 없었다.
정말 미친듯이 걸었다. 지도도 없고 목적지도 모른채 계속 걸었다. 그냥 걷다가 볼만한게 보이면 가보고 또 걷고.. 무슨 신대륙 찾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무식하게 여행을 했는지.
그렇게 가다보니 히카와마루(氷川丸)라는 배가 나타났다. 보기에도 화려해 보이는 이 거대한 배는 과거 세계최고의 여객선으로 한시절을 풍미했고, 요코하마 개항 100주년을 맞아 이곳에 영구히 정박되었다고 한다.
히카와마루를 바라보며 잠시 쉬다 시계를 보니 9시였다. 이제는 돌아가야 했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또 걸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요코하마 역만 찾으면 되니 조금 덜 헤멘다는 것일까.
여전히 많이 걷긴 했지만 별 어려움 없이 10시에 요코하마 역에 도착했다. 전철을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와서 귀국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6일째는 민박집 자리가 없어서 근처 캡슐호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대충 짐을 챙겨서 그곳으로 옮겼다.
밤에는 그새 친해진 다른 여행객들과 맥주 한잔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부터 맑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망할.. 내가 떠나는게 그렇게도 좋냐-_-
여러가지 추억을 남기면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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