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쿠라대전 슈퍼가요쇼 '신보물섬(新宝島)' 공연이 있는 날이다.
나는 오직 이걸 보기 위해 일본에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일본 여행을 계획 할때만 해도 일본어도 못하고 겁도 나고 해서 여행사 따라서 2박 3일 정도로나 다녀올까 했었는데, 신보물섬의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된 뒤 갑자기 용기가 솟아오르며-_- 부리나케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공연장소인 도쿄 후생연금회관의 간단한 약도등을 살펴본 뒤 민박을 나섰다. 밖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후생연금회관은 신주쿠에 있었는데 신주쿠 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나는 행여나 또 길을 잃을까 봐 조심조심 표지판을 살피며 찾아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헤메지 않고 후생연금회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쿄 후생연금회관.
나도 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스프레를 하고 온 분들도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가요쇼의 인기가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엽기니 호러니 하며 일부 팬들에게도 외면받는 가요쇼가 말이다.
줄에 합류해 가만히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갑자기 앞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하고 쳐다보니, Oh My!! 사쿠라대전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하신 다나카 코헤이 선생님과, 기타 출연진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분들은 줄 서 있는 사람들 한명한명에게 전부 악수를 청하며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악수를 하러 나오신 분들은 다나카 코헤이 선생님을 비롯, 오야카타 역의 나카지마 토시히코씨, 댄디보스 단 코스케 역의 소노오카 신타로씨, 댄디단의 니시무라 얀타로 역의 니시무라 요이치씨, 그리고 역시 댄디단의 베로무쵸 타케다 역의 타케다 시게히로씨였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한사람씩 손을 잡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길게 늘어선 줄.
출연진들과 악수를 하는 영광을. 오야카타 역의 나카지마 토시히코씨.
다나카 코헤이 선생님을 눈 앞에서 뵙다니..ㅜㅜ 셔터를 늦게 눌러 이모양이 되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뒷모습 한장 더.
댄디보스 역의 소노오카 신타로씨. 왼쪽의 빨간 양복을 입은 분은 니시무라 얀타로 역의 니시무라 요이치씨.
모든 분들과 악수를 마치고 조금 더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회관의 문이 열리고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서둘러 그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공연장이 보였다. 아직 공연까지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장 옆에 있는 매점에 들렀다. 안에는 모두 가지고 싶은 물건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돈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는 편이 아니라서 물건 하나하나 사는 것에도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
엄청나게 고민되었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신보물섬 포스터, 과자상자, 그리고 요코야마 치사씨의 브로마이드를 구입해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나의 자리는 2층에 있는 S석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또래의 사람들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외국인-서양인-까지 있었다. 하긴 나도 외국인인건 마찬가지지만.
드디어 입장이다. 오래 기다렸다구~
막이 오르기 전에.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된 가요쇼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마흔 다 된 출연진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뛰고 구르고.. 무대에서 직접 본다는 것의 생동감이 이런 느낌이구나. 클라이막스에서는 막 눈물이 나려고 해서 혼났다.
그 가슴 떨리는 순간순간을 글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거니와, 혹시 나중에라도 감상하시게 될 분들을 위해서 가요쇼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소감 역시 내 옆에 있던 한 팬의 한마디로 대신하고자 한다.
'幸せ~(행복해요)'
가요쇼는 끝났지만 난 좀처럼 후생연금회관을 떠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여서 자신들의 감상을 얘기하거나,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회관 주위에서 서성대던 나는 드디어 안떨어지는 다리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팬들이 보내온 화환.
공연이 끝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
코스프레가 빠질 수는 없지.
앗 동지!! 신주쿠 역에서 신보물섬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을 발견했다.^o^
공연장 매점에서 구입한 것 중 하나인 과자상자.
물론 과자는 다 먹었다.
안에는 메달(?)이 들어있다.
신보물섬 포스터.
요코야마 치사씨의 브로마이드. 이것은 나중에 요코야마씨의 열렬한 팬인 さくら愛님께 드렸다.
물건 담아온 종이백.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이케부쿠로(池袋)였다. 태정낭만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케부쿠로 역에 내리자 약간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나는 태정낭만당이 이케부쿠로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헤메다 보면 나오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유유자적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알지 못한 채......
이케부쿠로 역의 모습.
...이케부쿠로에 도착한 뒤 나는 거의 두시간 가량 역 주변에서 헤메고 있었다. 예전에 여행관련 사이트 등에서 본 바로 이 이케부쿠로라는 곳은 신주쿠 못지않은 번화가라고 했는데 내가 있는 곳은 조금 이상했다.
화가는 커녕, 무슨 거리는 어두침침하고 먹자골목 같은 곳만 가득한게 도저히 태정낭만당이 있는 동네 같지가 않았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다리도 아파오는 가운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서 '아 오늘은 관두자...' 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소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다음에 방문하는걸로..
그런데 역으로 가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나온 곳의 반대쪽 출구로는 아직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케부쿠로는 역을 경계로 크게 니시구치(西口), 히가시구치(東口)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가 지금껏 헤메고 있던 곳은 니시구치 쪽이었던 것이다.
니시구치에 있던 분수.
헤메던 중에.
쉽게 말해 이 쪽으로 나가야 되는데
이 쪽으로 나가면서 나의 고생길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토부(東武) 백화점 안에서.
역으로 돌아와 반대편인 히가시구치로 향했다. 확실히 첨단 건물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북적대는게 니시구치와는 달랐다. 이곳이라면 분명 태정낭만당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운을 차려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기를 10여분, 나는 드디어 태정낭만당을 발견했다...!
드디어 찾았다!!!! 태정낭만당!!!!
이게 꿈이냐 생시냐..ㅜㅜ
나는 눈물을 흘리며(거짓말) 태정낭만당이 있는 세가 GIGO 건물로 들어갔다. 당시의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태정낭만당 앞에 서 있는 지금 나에겐 그런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태정낭만당은 GIGO 7층에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했다.
7층에 도착하니 태정낭만당과 사쿠라카페가 보였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예전에 태정낭만당 홈페이지에서 '남자화장실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있다..' 라는 글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로 들어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이름도 찬란한 바라구미(薔薇組) 3인조의 거대한 그림이었다. 그것도 입체로 번쩍이는.
※목숨 걸고(?) 찍어온 태정낭만당과 사쿠라카페 사진들
남자화장실.
바라구미 등장!!
개인적으로는 이 바라구미에 대해 별 감정이 없지만 확실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했다.
다른 손님들 중 몇명이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살짝 문을 열어 그림을 보여주니 기겁을 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화장실을 나와 사쿠라카페로 들어갔다. 안에는 각각 제도, 파리, 뉴욕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걸려있고, 커다란 코부(光武)의 모형이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사쿠라대전 관련 동영상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딱히 배가 고프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로벨리아 칵테일을 주문했다. 사실 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윽고 칵테일이 나와 천천히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안은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대부분이 친구, 혹은 가족끼리 모여있는데 나 혼자 앉아있으려니 조금 뻘쭘한 기분이었다;
칵테일은 도수가 무척 낮고, 달착지근한 맛이었다.
카페 입구 쪽에 있던 포스터. 성우들의 싸인이 보인다.
카페 내부의 모습.
사쿠라 카페 티슈.
이것이 일본에서도 미성년자는 못 마시는 로벨리아 칵테일이다!!
얼음이 반이다.
칵테일을 다 마신 뒤, 남아있는 얼음까지 몽땅 씹어먹고 나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을 하고 카페를 나와 드디어 태정낭만당으로 들어갔다.
낭만당 내에서는 사쿠라대전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가요쇼 등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 중 일부.
태정낭만당 안은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다. 사쿠라대전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게임이나 애니 등은 물론, 각종 팬시 상품이라던가 프라모델, 인형, 심지어 과자까지.. 게임 속의 타이쇼(太正) 시대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자 난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끝에야 나는 낭만당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리아와 사쿠라의 공연 의상.
사쿠라와 아이리스의 1/1 스케일의 피규어. 아이리스 피규어는 40만엔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몰래 찍느라 조금 이상한 구도로-_-
클리어 파일 등의 팬시 상품.
코부 프라모델.
파리 화격단 인형.
튜브와 비치볼. 나도 이런거 가지고 바다에 가고 싶다.
지금은 팔지 않는 것들은 따로 전시해 두었다.
애니와 음반들.
라파엘과 엔필드.
코크리코의 냥냥인형.
사쿠라 불량식품.
방명록도 적어야지.
이중에 가지고 싶지 않은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역시 자금사정을 생각해야 했다. 카메라 때문에 날아가버린 만엔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또 한동안 고민한 끝에 '질보다 양!' 을 외치며 가장 싼 물건 네개를 집어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다 합쳐서 천엔 정도였다.
카운터로 가자 점원이 포인트 카드를 만들겠냐고 물었다. 물론 OK.
주어진 양식을 작성하다 보니 주소를 쓰는 난이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거면 됐다면서 포인트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_^b
태정낭만당에서 일은 모두 끝났지만, 도무지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언제 여길 다시 와 볼 것인가.
그렇다고 계속 서 있어봤자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태정낭만당에 작별을 고했다.
태정낭만당에서 구입한 것들. 왼쪽부터 에리카 버튼, 파리화격단 명함, 에리카 키홀더, 사쿠라대전 3 트레이딩 카드.
직원모집. 날 채용해 줘!!
돌아가면서. 안녕 태정낭만당...ㅜㅜ
멋진 암럭스 빌딩.
돌풍을 일으키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한신.
민박집에 돌아와서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날은 내 인생 최고의 하루였다. 사쿠라대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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