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인터넷으로 뻘짓을 하다가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1시 좀 넘어서 전화가 왔는데 어차피 우체국이나 집에서 온 전화겠지 하고 무시한 채 계속 잠을 청했다.(진동이라서 별로 시끄럽진 않았다.)
십여분 뒤에 다시 진동이 울리길래 와서 자리를 걷고 일어나 받았는데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온 전화였다. 간단한 안부를 전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몇마디 주고받은 뒤 매일 그렇듯이 먼저 컴퓨터를 켰다. 오전에는 닉스 게임이 있었는데 댈러스와 맞붙어서 맥없이 패한 모양이다. 라이브로 봤으면 더 열만 받았을거라며 페이지를 옮겨 일본 우체국 사이트에 접속했다. 얼마전에 보낸 EMS가 반송이 됐는데 국제교환지점에서 발송한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던 것이다. EMS 조회를 해보자 반송처리 후 이틀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 뒤로는 전혀 진행이 되어있지 않았다. 구글에서 EMS 반송 건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고 있는데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을 흔히 지진의 나라라고 하듯이 집이 흔들리는 정도의 지진은 곧잘 있는 일이고, 일본 생활 2년째를 맞이하는 내게도 일상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흔들림이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진폭은 더욱 커져가며 책상 및 책꽂이에 있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거울을 깨지지않게 바닥에 내려두고 컴퓨터와 서랍을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가 이러고 있는다고 지진이 멎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ㅡ기나긴 흔들림이 멈추고 일단 옷을 챙겨입고 집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는 건 일본 와서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여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접속했다. 구글 챗팅으로 강방호 님과 메세지를 주고 받는데 5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모르겠지만 내 방은 무척 좁기 때문에 한번 무너졌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 같아서 바로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1월에 이사온 이곳은 작년에 다녔던 어학원 근처였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보자 어학원도 이미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피난 시키고 있었다.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그대로 귀가했지만 전철 등이 운행 중단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신주쿠 교엔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집은 코 앞이지만 집에 있는게 무서워서 밖으로 나와있는지라 어학원 사무실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일가친척을 포함해 일본에 와 있는 사람은 작년까지 같이 살았던 김성수 군 한명 뿐이었기 때문에 다른데 어디 갈 데도 없었다.
신주쿠의 유니카 비전에서도 지진속보가 중계중
여기서 더 나아갈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5시 쯤 어학원을 나와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고 백엔샾으로 향했다. 이 부근이 평소에는 그다지 유동인구가 많은 편은 아닌데 길거리에는 신주쿠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은 백엔샾에 먹을게 있었기 때문에 빵과 커피를 사들고 나도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신주쿠 중심가로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늘어나 더이상 나아가는게 힘들어 보였는데, 내가 꼭 신주쿠에 가야 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웃기는 건 이 와중에도 파칭코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인터넷에 접속해 나의 무사를 알리며 빵을 한입 뜯어먹는 순간 다시 흔들림이 시작되었다. 나는 챗팅창에 '사랑합니다' 한 마디를 적고는 그대로 집을 빠져나왔다.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밖에 있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거기다 난 따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 역이라면 추위도 피하고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운행을 정지 중이었기 때문에 지하철 역으로의 진입도 통제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집에 돌아갔다가 흔들림이 시작되면 도로 나왔다가를 계속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화는 아까부터 계속 불통이었지만 다행히 인터넷을 하는 동안 형이 메신저에 접속해 있어서 가족들에게 나의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7시 30분 다시 흔들림을 느낀 나는 짐을 싸들고 또 한번 밖으로 나왔다. 인파는 더욱 늘어나 있었고, 도로는 꽉 막힌 차들로 반쯤 카오스였다. 목적지는 없지만 나도 그 속에 섞여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뭐가 됐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일단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파의 대부분은 신주쿠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대로 야스쿠니 도리를 직진해서 이치가야에서 다리를 건너면 아키하바라로 가는 길이다. 왜 그 상황에서 아키하바라를 가려고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은 일방적으로 신주쿠로 향하는 인파가 많았지만 쿠단시타 즈음에 이르니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는데 공중전화는 연결이 되는지 폰부스 앞에는 사람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때 휴대전화의 통화품질을 유지/보수 하는 일을 했었는데 행사 등으로 통화량이 늘어난다던가, 호우로 기지국이 침수되기라도 한다면 잠도 못자고 비상대기를 하곤 했었다. 일본에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대상이 지진이 된 지금은 도대체 어떤 대책을 세워야하나. 나로선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아키하바라는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기에(지하철보다 더 빠름) 금방 가겠거니 했는데 걷게 되자 역시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는데, 굳이 지진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이시간이면 아무도 없을 시간이다. JR아키하바라역에는 전철 운행 정지로 인해 발이 묶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는데 코스프레 비슷한 옷차림의 여성들과각종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정말 아키하바라구나 라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때는 요행히 전화가 연결이 되었는지 한국에 계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형, 강방호 님, 정우형, 사이타마에 사는 김성수 군 등과 통화를 하며 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나자 불안함만 가득했던 마음도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한 시간 넘게 걸어왔던 거리를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 맥이 빠졌지만 다행히 토에이 신주쿠선이 운행을 재개하기 시작해서 오가와마치에서 신주쿠선을 타고 신주쿠산쵸메까지 갈 수 있었다. 지하철은 만약을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천천히 나아갔는데 차량 자체의 덜컹거림마저 겁이 날 정도로 나의 심신은 쇠약해져 있었다.
아키하바라
신주쿠산쵸메 역에서 내려 하루 종일 빵 두개 먹은게 다였기 때문에 음식점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24시간 운영하는 마츠야나 요시노야의 불이 꺼져 있었다. 백엔샾이나 편의점에 들어가보니 도시락이며 오니기리 빵 등등의 식료품들이 하나도 없었다. 황당한 마음에 자판기에서 콘포타쥬 하나 뽑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먹을거라곤 지난주에 사둔 라면 하나 뿐이었다. 뜨거운 물이 있어야 되는데 가스렌지는 불안한 마음에 쓰고 싶지않았고 가스공급도 일시적으로 끊겼는지 온수도 안나왔다. 결국 라면을 찬물에 불려 먹었다ㅜㅜ
밤에는 원세그를 틀어놓고 밤새 잠 들수 없었다. 계속해서 여진이 이어졌고 간헐적인 흔들림이 계속되었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로 휴대폰에 매달려 뜬눈으로 밤을 지샌 뒤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선잠을 잘 수 있었다.
(12일)오후 2시 쯤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거리는 표면적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인파는 보이지 않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들도 평소처럼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츠야는 다시 영업을 재개하고 있었지만 백엔샾과 편의점의 식료품 코너는 여전히 텅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비상시를 대비해서 사가기도 했겠지만 이번 지진으로 일부 공장이 타격을 입어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 포털에서는 신나서 일본침몰 2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안부전화 한통이 없다.(대부분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지만) 메신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시덥잖은 농담만 날리고, 잘 있냐고 좀 물어봐달라고 내가 오히려 구걸하고 다니는 처지다.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도쿄에서도 희생자가 발생했고 나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사람이 말 한마디로 얼마나 큰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왜 '괜찮냐 다행이다' 라는 한마디를 먼저 못해주는지. 30년 살면서 내 인간관계란 고작 이런거였나 하는 회의가 느껴졌다.
그래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직은 삶의 의지를 놓을 수 없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이젠 정리도 안되고 뭔 말을 하려고 했던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쯤에서 끝내야 될거 같다.
오늘은 깨끗하게 목욕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츠케멘이라도 먹으러 갈 생각이다. 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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